무한공간

감자탕.. 감자란 돼지등뼈에 붙은 척수

ㅋㅌㅌ 2022. 5. 8. 07:31

#수요미식회
[넘나 궁금] 감자탕은 왜 ′감자′탕일까요? 수요미식회 114화
https://www.youtube.com/watch?v=xxcD31HOhXc 

 

 

 

#영국엄마시리즈 #감타장 첫편! 

영국 엄마가 감자탕을 처음 드셔 본 첫인상?! 영국 엄마 시리즈 3! 1편!  

https://www.youtube.com/watch?v=_mT1UmrwbLo 

 

감자탕의 ‘감자’는 식물 감자(potato)가 아니다. 감 즉 등골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감자탕은 삼국시대 전라도 지방에서 먹기 시작했고, 개항과 함께 인천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는데 “감자탕에 감자가 왜 없냐.”라는 타지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채소 감자를 넣어 팔면서 주인공이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감자탕의 어원과 유래가 돼지등뼈인지 감자potato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그러나 우리 음식 조리 원리에 따른 ‘탕’은 오랫동안 팔팔 끓이는 조리법을 가리키므로 돼지등뼈가 더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돼지등뼈는 골이 져 있어 뼈에 붙은 살을 발라내기가 쉽지 않은 부위로, 삶아 내야 뼈에 붙은 살을 발라먹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이나 탕이 적절한 조리법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감자가 들어가면서 감자탕이라는 명칭도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로서 감자탕을 어느 지역에서 언제부터 처음 먹기 시작했는지 등에 대해 확실한 문헌상의 근거는 없다.

 

감자(potato)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이 원산인 작물. 기원전 3천여 년 전부터 재배되어 왔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항로 개척 이후 다른 유명한 작물인 담배와 함께 유럽에 들어왔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국내에는 18세기 초반에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1824-5년쯤에 청나라를 통해 전래되었다고 한다.

 

유럽에 들어왔을 때 감자는 크기도 작을 뿐더러, 당분을 거의 축적하지 않아 말 그대로 밍밍한 맛이 났다. 서양에서 감자는 가축사료로 재배가 확산되었다. 아일랜드를 제외하면 사람이 먹는 경우가 드물었다. 품종개량을 거쳐 제법 먹을 만한 물건으로 거듭났다.

 

감자는 먹을 수 있는 덩어리 부위를 제외하면 모든 부위가 독성을 띤 독초다. 땅에서 캐기 때문에 고구마나 당근 같은 뿌리작물로 알기도 하지만 사실은 줄기의 일부이다. 감자는 조선시대에서는 북에서 유입되었다고 해서 초기에는 북저라고 불렀다. '감자'라는 단어는 중국 표현 감저(甘藷)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한반도 유입 초기에 감저는 감자와 고구마의 통칭으로도 쓰였다. 

 

아직도 함경도나 황해도 지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고구마를 표현한다. 반대로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지역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 부르고 감자에 접두어를 붙여 하짓감자라 부른다. 김동인의 소설 제목인 감자도 사실은 고구마를 의미한다.

 

감자는 전분이 많기 때문에 맑은 국물을 내기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카레같이 점성이 필요하고 자극이 강한 요리를 할 때에는 이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맑은 국에 넣으면 끓이면 끓일수록 전분 때문에 국물이 텁텁해진다.

 

고구마의 원산지는 멕시코 고산지대라고 추정한다. 스페인 중국 통해 한국에는 조선시대 후기(18세기 후반)로, 감자가 들어온 시기(19세기 초반)와 비슷한 무렵이다. 고구마가 조선에 전래된 경위는 조선 영조 39년(1763)에 조선 통신사 조엄이 한국의 대마도 섬에서 고구마를 목격하고 이듬해 제주도와 동래부(부산) 영도에서 이를 기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정설이다

 

일본이 대마도를 불법점거 중이고 국제법상 대마도는 한국땅!

1. 오가사와라 제도.. 미국 페리제독이 일본 강제 개항하면서 동양 진출의 섬으로 식민지로 만듬.
일본이 영토 소유 주장한  근거자료 - 유럽 동양학자 클라프로트가 번역한 지도 <삼국접양지도> 프랑스어판
미국은 어쩔수 없이 삼국접양지도의 증거를 인정하고 일본에 오가사와라 제도 반환
그런데 <삼국접양지도>에 독도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고 표시.
일본이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삼국접양지도>를 근거로 대마도가 한국땅임이 명확해짐.
2. 미국 육해군 합동 정보조직 "JANIS 75'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지도가 발견

[단독] 대마도 분쟁 국제사법재판소 간다!! 대마도, 한국땅 될 확률 70%
https://www.youtube.com/watch?v=46Z_AFEwD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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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예조판서 허조의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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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하가 성심으로 회오하고 신복이 되고자 포로를 송환 하며 예물을 진헌하면서 알리는 바가 상세하여 왕께서도 모두 이를 윤허하셨으니 한 섬의 복이로다.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 했으니 모든 보고는 반드시 경상도 관찰사에 알려서 시행하고 예조에 직접 전할수 없다. 잎으로는 족하가 친서한 서계를 가지고 와야 예접을 허락할 것이니 도장을 종씨도도웅환이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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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람들이 살고 고려시대 말을 방목하던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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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와 182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 등에 면 대마도는 부산 동래부의 부속도서로 되어있으며 12세기말 일본의 대마도에 대해 기술된 '산가요약기’에서는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하여 기른 곳이고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대마도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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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원래 고구려을 거처 신라에 소속됐던 섬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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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우리의 땅이었기에 옛날 우리 지도에는 대마도를 일본 본섬보다 더 크게 그려넣었다. 또한 일본보다 대한민국에 매우 가까이 있다. 여기에 일본인이 살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 조상중 경상도에 살던 일부가 대마도에 살았고 고구려와 신라가 다스렸던 영토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 중국 대륙쪽으로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대마도 관리에 소홀해졌고, 그 틈을 타서 왜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일본 땅이 돼버렸다는 것.

일본 역대 장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반쇼인(万松院)의 감나비(부도)는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사리탑으로 우리나라 의정부에 있는 무학대사 것과 닮았다.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5개의 도리(문)를 세워 용왕의 신화를 연상케해주는 와타즈미신사의 뒷 숲에 있는 남근석도 일본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문화 유산. 대마도에는 또 우리 역사속의 인물들의 발자취도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특히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섬을 왕래했던 조선통신사들은 끊을 수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1703년엔 우호사절로 부산을 떠났던 108명의 통신사들이 대마도를 바로 눈앞에 두고 모두가 조난당하기도 했다. 부산이 가깝게 보이는 한국전망대 옆에는 그 당시의 조선통신사들의 순국을 기리는 위령비가 서 있다.

구한말 면암 최익현 선생도 일본군에 의해 대마도 이즈하라에 연금당해 있던 중 단식으로 항거하다 순국했다. 그를 기리는 순국비는 백제 스님이 건너와 창건했다는 이즈하라시내의 스이젠지(修善寺)에 서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했던 조선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도 대마도에 뿌리가 내려져 있다. 1912년에 태어난 덕혜옹주는 쓰시마 도주인 쇼다케시백작과 정략 결혼을 했으나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해 끝내 신경질환까지 앓고 이혼당했다. 이즈하라시 반쇼인에는 덕혜옹주와 대마도주의 결혼 기념비도 이들의 비극을 상징하듯 쓰러져 있으며,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입구에는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대마도주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일본이 대마도를 불법점거 중이고 국제법상 대마도는 한국땅!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예속되었는데 언제부터 왜인이 살게되었는지 모르겠다..(동지여지승람).대마도주는 동번으로 청하면서 우리나라에 신하로서 섬겼으며...(조선실록) .대마도는 섬으로서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 되었던바...(세종실록) ...조선 1557년에도 1860년에도 대마도가 경상도에 속한 우리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국경선 일대의 섬을 비워둔다는 ‘공도(空島) 정책’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고 1868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때 일본땅으로 넘어감.

 

대마도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선언한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은 재임기간 12년동안 미국으로부터 일본과 수교를 맺으라는 수 많은 협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일본과의 수교조건으로 대마도 반환,  식민지보상 36억불 청구 등 사실상 일본이 받아 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함으로써 그는 끝끝내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했다.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예속되었는데 언제부터 왜인이 살게되었는지 모르겠다..(동지여지승람)
.대마도주는 동번으로 청하면서 우리나라에 신하로서 섬겼으며...(조선실록) 
.대마도는 섬으로서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 되었던바...(세종실록)
...조선 1557년에도 1860년에도 대마도가 경상도에 속한 우리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어리석은 정책이었던 국경선 일대의 섬을 비워둔다는 ‘공도(空島) 정책’으로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고 파벌정치에 빠져있던 조선이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영토가 정식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넘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