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417년 만에 노량해전 잇는 '도쿄대첩', '11·19 대첩'
노량해전(露梁海戰)
임진왜란 최후의 대규모 해전으로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싸움이이었다.
1592년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한 일본은 11월 왜장 고니시 등이 이끄는 500여 척의 왜선이 노량수로와 왜교 등지에서 공격해 왔다. 200여 척의 배밖에 보유하지 못했던
이 전투에서 200여 척의 일본수군이 격파되고 패잔선 50여 척만이 관음포 방면으로 달아났다. 철군하는 일본의 퇴로를 막아 적선 50척을 격파하고 200여명을 수장시켰습니다.
이순신은 도주하는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적을 격파하여 포위되었던 명의 장수인 진린을 구하고 적을 추격하다가 왜적의 흉탄에 맞고 쓰러졌다. 이순신의 유언으로 그의 죽음은 노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에야 알려졌다.
노량해전의 승리는 정유재란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야구 한일전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과거 11월 19일에 노량해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11월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4강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4-3으로 승리했다.
한국은 미국과 21일 결승전을 펼칠 예정이다.
417년전 노량해전 때처럼 박멸당한 일본
세계랭킹 상위 12개국의 국가대항전인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이겼습니다. 괴물 투수 오타니에게 막혀 패색이 짙었지만 9회 초 기적 같은 역전에 성공해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를 두고 11ㆍ19 대첩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417년 전인 1598년 노량해전이 있었던 날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한일전이 열리기로 한 날이 417년 전 노량해전이 있었던 11월 19일이 아닌 20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준결승을 한 뒤 결승전을 앞두고 휴식일을 갖기 위해 일정을 하루 앞당겼습니다. 준결승 상대는 안중에도 없었고 당연하게 결승에 진출해 우승을 하겠다는 의중이었습니다. 참가국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도 없었습니다.
이런 식의 대회 운영 때문에 일본은 노량 앞바다에서 무참하게 패했던 그날 도쿄돔에서 거짓말 같은 역전패를 당하게 됐습니다.
개막전은 일본에서 하고 나머지 예선은 대만에서 하는 일정은 그렇다 손치더라도 우리 대표팀에게는 개막전에 앞서 경기장에서 연습하고 적응할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예선을 치를 때 다른 나라는 밤과 낮 경기를 오가는 부담스러운 일정을 견뎌야 했지만 일본은 저녁 경기만을 했습니다. 한국이 준결승을 위해 대만에서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편도 새벽 시간에 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