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공간

장충단은 공원이 아닌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현충원

ㅋㅌㅌ 2016. 2. 28. 07:08


장충단(奬忠壇) 국립현충원


대한제국 때 을미사변·임오군란으로 순사(殉死)한 충신·열사를 제사지내던 곳.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 민씨가 살해된 지 5년 뒤인 1900년 9월, 고종은 장충단을 꾸며 을미사변 때 순사한 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장충단은 공원이 아니라 고종이 세운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현충원이었습니다.


'장충(奬忠)'이라는 것은 '충'을 붇돋아 권하는 것을 말한다. 장충단이란 왕을 위해 죽은 장졸들의 충을 기리면서 신민들의 왕에 대한 충을 북돋우기위해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말한다. 국가단위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들의 유해나 위패를 안치한 장소를 국가의 성소(聖所)로 관리하는 것은 근대 국민국가에서 국민통합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프랑스 팡테옹 국립묘지 등이 그러하고,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가 그러하다.


고종은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지키려다 희생된 군인들을 추모하면서 일본의 만행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결의로 장충단을 세웠습니다.


1910년 8월 장충단은 일제가 비를 뽑아 버렸습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이 곳 일대를 장충단공원으로 이름하여 벚꽃을 심고 공원시설을 설치하였으며, 1932년엔 한국 침탈의 장본인인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인 '박문사'까지 세우고 경희궁 정문을 뽑아 출입문으로 씁니다.


해방 이후 박문사는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신라호텔 영빈관이 들어섰지만, 장충단은 끝내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해방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이곳을 '장충단'이 아닌 '장충단공원'이라는 말을 붙여 불러왔다는 사실은, 이곳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우리가 잊고 지내왔다는 거죠.


공원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장충단' 비석.

명성황후 아들인 순종의 친필이 담긴 이 비석만이 우리가 되새겨야 할 비운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표교(水標橋)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장충단공원 입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다리. 원래는 현재의 청계천 2가에 있었으나 1959년에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았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 배호


안개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 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 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 버린 그 사람의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있는데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떠나가는 장충단공원





1박2일 서울시간여행


대학로에 있는 가장 오래된 다방 학림다방, 장충동에 있는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 연지동에 있는 가장 오래된 사무실 대호빌딩, 중랑천에 있는 가장 오래된 다리 살곶이 다리, 그리고 서울 한 복판에 있는 정동의 배재학당, 서울시립미술관, 중명전과 구러시아공사관.


이 오래된 공간들은 무심코 지나치며 살아왔던 우리들에겐 그다지 큰 의미를 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시간과 흔적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 1박2일 > 출연자들이 찍은 자신들의 사진과 그 똑같은 공간에서 찍은 부모님들의 사진이 오버랩 됐을 때 그들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간이 사실은 그 시간의 추억들을 켜켜이 쌓아놓고 있다는 걸 < 1박2일 >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 또한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시간의 기억들은 기둥 위에 새겨진 낙서처럼 공간에 흔적을 남긴다. 우리가 갔던 그 길을 우리가 알던 그 분들도 똑같이 걸어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인가.

 

공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기억, 추억들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왜 미처 몰랐던 것일까.


'처음부터 특별한 장소는 없다.

추억이 그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뿐.'


이 오래된 공간들은 무심코 지나치며 살아왔던 우리들에겐 그다지 큰 의미를 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현충원이란 공간값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한번 의문부호를 던지고 싶었다. 아직도 현충원을 공원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일본 야스쿠니 신사는 알아도 현충원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한국인들이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