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공간

결혼은 미친짓이다 (ft 배재대)

ㅋㅌㅌ 2019. 5. 11. 12:00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만교 배재대 국어국문학과

출판사 : 민음사 / 출판일 : 2000. 5. 20

 

"얼마나 좋아하는 거죠? 한 달? 이틀? 반 시간?...

제가 알고 싶은 것은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를 다른 누구보다도 더욱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지속되느냐는 것입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한 과학교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남녀 간 사랑의 유효기간이 길어야 90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은 사실을 찬찬히 설득력 있게 보여 줬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처음 사랑이 시작되는 무렵과 100일, 200일이 지난 뒤 남녀가 키스할 때의 심장 박동수를 측정해 그 논거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 반응 정도가 둔화되어 1년이 지나면 그 열정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고. 그러면서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라 그것이 식지 않고 계속된다면 어떤 사람도 온전히 버티지 못할 거라고 했다. 

 

130여 년 전, 톨스토이도 증오와 질투에 휩싸여 아내를 살해한 사내의 입을 통해 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과학의 힘을 빌린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 사람들 역시 직감적으로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으며 그 기간이 무척 짧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봐, 절대로, 절대로 결혼 같은 것은 하지 말게. 이것이 자네에게 주는 나의 충고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스스로 단언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리고 또 자네가 선택한 여자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 그 여자의 참모습을 명백히 꿰뚫을 수 있을 때까지는 결혼하지 말게..."

톨스토이_《전쟁과 평화》에서

 

우리 회사 사람들이 결혼하는 사람들은 관찰하면서 내린 결론인데, 사람들이 하필 그 전에 사랑한 사람이나 그 후에 사랑할 사람이 아닌, 바로 지금의 그 사람이랑 결혼하게 되는건 단지, 그 사람을 결혼 적령기에 만났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누구를 만나 사랑해도 상관없는데 단지 순서가 문제이니 거지. 그 중에서 제일 괜찮은 남자를 바로 결혼 적령기때 만나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거니까 (

결혼은 미친짓이다, 

133쪽)

 

조명디자이너 연희(엄정화)는 대학 시간강사인 준영(감우성)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주저한다. 그러다 결국 조건 좋은 의사와 결혼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그와의 관계를 유지한다. 

“결혼한 친구들 보면 다 비슷하더라. 걱정도 고만고만, 행복도 고만고만. 무슨 체인점 차린 것 같아.” “갈수록 아무런 죄책감도 느껴지지가 않아. 남들보다 약간 바쁘게 사는 거 같은 느낌뿐이야.”“난 자신 있어.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

영화 '결혼은 미친짓이다'는 결국 준영이 은희와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그 자신이 가야할 길 혹은 가고 싶은 길을 회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을 텔레비전 채널 돌리듯 외면할 수 있는게 현대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결론은 모순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눈과 감각으로 지속되는 사랑보다 상대방 안에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어떤 매력, 어떤 본질을 발견하고 집중하면 어떨까...

 

국책연구원의 미혼 남녀 결혼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보면서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변하였는지 미처 몰랐음을 깨달았다. 이 조사에 의하면 결혼이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답변은 남성이 50.5%로 겨우 절반을 넘었으며, 여성의 경우 28.8%로 나타나서 긍정적인 답변이 10명 중 3명에도 못 미쳤다. 이 실태조사는 젊은이들의 비(非)혼화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연 결혼은 미친 짓으로 볼 만큼 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의 ‘결혼이론’에 의하면 결혼을 선택하려는 결정은 ‘결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혼자 살아갈 때 얻는 만족보다 클 것이다’라는 기대 하에서 이루어진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적 사고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결혼생활로부터 얻는 효용(utility)의 크기가 혼자 생활 할 때 얻는 효용수준보다 크다면 그(혹은 그녀)는 결혼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독신주의자로 남게 될 것이다.

 

문제는 독신생활에서 얻는 만족감과는 달리 결혼생활로부터 얻는 만족감은 결혼을 선택하는 시점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에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점이다. 즉, 결혼생활로부터 얻는 효용수준은 미래에 대한 기대치(expected value)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후 현실에서 얻는 만족도의 수준이 사전적(事前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불행은 시작되고 급기야 이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생활의 구조적인 모순을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결혼이란 창문을 닫고선 잠들 수 없는 남자와 창문을 열고선 잠들 수 없는 여자간의 결합이다.” 이러한 결합은 근본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합리적 선택의 관점에서는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자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행동은 흔히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동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해결책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힘들 것인가? 경제성장이론 중에 ‘칼날 위의 균형’(equilibrium on the edge)이라는 불안정한 균형상태가 존재한다는 이론이 있다. 결혼생활을 잘 영위하는 일은 이러한 칼날 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파국의 위험성은 결혼생활 내내 계속된다. 그러니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영화제목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아니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에 대한 속담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최고의 현답이었다. 매우 현실적인 속담을 찾았다. ‘결혼의 성공은 적당한 짝을 찾는 게 아니라 적당한 짝이 되는 데 있다.’ ‘결혼은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랑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다.’ 이마저 자신이 없다면 비혼을 선언할 일이다. 

 

 

 

 

‘칼날 위의 균형’(equilibrium on the edge)... 

결혼은 미친짓이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