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17C
체면을 위해 성을 갖기 위해 공명첩을 사고 팔음..
#한국인 #조선시대 #성씨
한국인 성씨·족보 대부분이 가짜임ㅣ한국에 '김, 이, 박'씨가 유독 많은 진짜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V19acTthOLU
한국인, 일본인, 프랑스인 3명이 외계인과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처음 만난 외계인을 신기해하며 각자 궁금한 것을 물었습니다.
프랑스인: 그곳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요? 혹시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나누나요?
일본인: 그곳은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나요?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한국인: 그곳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국인들은 남들의 시선에 매우 예민하다는 우화입니다.
한국인은 특유의 겉치레와 자기과시가 유별나다.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이라고나 할까. 해외 명품 의류가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등산화, 등산복 조차도 명품으로 입고 나온다.
겉치레를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은 못살았고 내세울 것 없었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같은 느낌이다. 특히 고가의 등산복장이나 고가의 자전거, 자동차나 옷과 소품들로 과시를 하는 부류가 얼마나 궁핍하게 쩔어 살았던 과거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한 찌질이 사람들일뿐이다. 자기과시를 통한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 그곳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 아직도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걱정부터 하는 과거 찌질이 인생으로 살았던 과거 보상 심리에 쩔어사는 사람으로 살고 계신가요? 체면이 그렇게도 중요한가요?
김종민(金鐘旼)
... 쇠죽 종 鐘, 화락할 민 旼. 경주김씨 21대손 판도판서공파
[Q&A]한국 1위 성씨 김씨 한국에 김씨는 왜이렇게 많을까
.성씨는 삼국시대부터 사용. 왕이나 귀족들만 사용.
.고려 왕건 - 개국공신에게 성씨와 본관 지급. 노비는 주인이 부르는 대로 불림.
.고려 문종 - 성을 붙이지 않은 사람은 과거에서 급제를 할 수 없다. 일반 백성들도 성을 갖기 위해 갖은 노력.
.조선 초까지 천인계급이나 노비 등은 성씨를 갖지 못했으며, 그 비율은 조선 초기에도 전체 인구의 40%.
.16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 전체 인구에서 성을가진 사람은 10%
.17세기 이후부터 성씨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 공명첩 - 광해군 때 재정 확보를 위해 돈을 주고 벼슬을 파는 행위가 늘어남.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폐지되고 노비들도 성씨를 가지게 됨.
...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옛 사람들은 실제 우리의 조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종갓집 맏며느리? 그 호적이 진짜일까요. 돈주고 구매한 것일까요.
한자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는 장수왕시대, 백제는 근초고왕시대, 신라는 진흥왕 때로 추정된다. 그리고 왕실의 성씨가 ‘고씨’ ‘여씨’ ‘김씨’를 썼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성씨가 많았다.
신라의 왕성인 김씨와 박씨, 그리고 신라 건국 6성인 이씨, 최씨, 정씨(鄭), 손씨, 배씨, 설씨(薛), 그리고 허씨 등은 시조가 분명히 한인(韓人)이다.
김(金)씨는 대한민국의 성씨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21.5%가 사용하는 가장 많이 쓰이는 성씨이다. 한 나라에 전체 인구 중 특정 성씨가 20% 이상이 되는 나라는 한국 말고 베트남이 있다.
귀화인을 제외한 한국 성씨는 2003년 기준 286개이다.
286개라는 숫자도 발음은 같아도 한자가 다른 성씨를 따로 집계한 것이고, 성씨를 한글로만 적었을 때는 100개를 조금 넘는 정도다. 한국의
김(金)씨는 21.5%이다.
김해김씨가 전체 인구의 9%
밀약박씨가 6.2%
전주이씨가 5.3%
경주김씨가 3.6%입니다.
성씨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됐는데요
이 당시에는 왕이나 귀족들만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보편화가 시작된 것은 고려시대 이후죠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합 전쟁을 도와준 지방 유력 계층에게 성씨와 본관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비와 천민계급은 성씨를 사용할 수 없었죠
그래서 노비들은 딱히 이름이 없고 주인이 부르는대로 불렸던 것입니다
고려 문종 때 들어와서 또 한 번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문종이 9년(1055년)에 성을 붙이지 않은 사람은 과거에서 급제를 할 수 없다는 법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천민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성을 갖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고려 문종 이후의 사람을 시조(또는 중시조)로 하는 성씨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고려는 물론 조선 초까지 향·부곡·소에 살고 있는 천인계급이나 노비 등은 성씨를 갖지 못했으며, 그 비율은 조선 초기에도 전체 인구의 40%나 되었다고 한다.
16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 전체 인구에서 성을가진 사람은 10%정도 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7세기 이후부터 성씨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광해군 때 재정 확보를 위해 돈을 주고 벼슬을 파는 행위가 늘어났습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당시 거래되었던 공명첩인데요. 사람들은 공명첩을 이용해 성씨를 얻었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폐지되고 노비들도 성씨를 가지게 됐습니다. 시간이 계속 흘러 성씨를 가지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죠.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옛 사람들은 실제 우리의 조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명첩으로 성을 샀다면 우리의 성이 바뀌었다는 뜻이고
그렇다는 것은 조상도 바뀌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본관을 따지고 파를 따지는 것은 어찌보면 상당히 의미없는 짓일 수도 있겠네요
1909년에 호적에 해당하는 민적법이 처음 시행되면서 노비와 천민계급까지 성과 이름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성씨는 주인의 성씨를 따르고 이름은 돌쇠, 마당쇠, 송아지, 강아지, 도야지등의 이름을 쓰고, 말똥이, 개똥이도 흔한 이름이었으며, 호박이, 납작이, 마당이, 부엌이 등도 여자 이름으로 많이 썼으니 이름은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한번 더 족보가 꼬이죠. 이제부터 왜 김씨가 많아졌는지 그 이유가 시작됩니다.
국내 희귀 성씨
동성동본 금혼은 성씨가 많지 않았던 1669년 현종 당시 송시열이 주장하여 만든 것이다. 당시로서는 아마 당연한 규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성씨가 이미 엉망이 된 마당에 동성동본 타령을 하는 것은 웃기지 않는가.
김(金) 씨나 이(李) 씨가 갑자기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특정 성씨가 총 인구의 20%를 넘어 가는 경우는 없는데 양반 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던 우리 나라에서만 나타난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여튼 우리나라는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양반화가 자연스러이 이루어졌고
옛날 이야기에 그 많던 “방자, 향단이, 마당쇠, 구월이...”의 자손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슨무슨 정승, 판서의 몇 대 손이 되어 버렸고,
오로지 양반의 후손만이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양반이 많은 나라가 되었고,
또한 제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불과 100 여 년 전만 해도 “성씨도 없는 쌍놈들”은 제사고 차례고 지낼 수가 없었는데 요즈음은 집집마다 장손이면 모두 명절날 차례를 지낸다.
참고로 5000년 전부터 성씨를 사용해 온 중국의 경우를 보면 성씨별 인구 1, 2, 3위의 비율은 각각 7.4%, 7.2%, 6.8%로 되어 있어서, 특정 성씨로 몰리는 현상은 없다.
전국에 인구가 100명도 안 되는 성씨에는 강전 씨, 개 씨, 관 씨, 교 씨, 군 씨, 난 씨, 뇌 씨, 누 씨, 다 씨, 담 씨, 독 씨, 등 씨, 등정 씨, 뢰 씨, 망절 씨, 묘 씨, 무 씨, 무본 씨, 미 씨, 번 씨, 보 씨, 비 씨, 산 씨, 삼 씨, 섭 씨, 소봉 씨, 수 씨, 십 씨, 애 씨, 야 씨, 어금 씨, 영 씨, 완 씨, 요 씨, 자 씨, 잠 씨, 장곡 씨, 저 씨, 준 씨, 즙 씨, 증 씨, 총 씨, 춘 씨, 쾌 씨, 탕 씨, 포 씨, 학 씨, 환 씨, 황목 씨, 후 씨, 흥 씨가 우리나라 성씨로 등록되어 있다.
슈나이더 schneider 재단사, 슈마허 schumacher 신발장인 , 피셔 fischer 어부, 메쯔꺼 metzger 정육점 주인, 바우어 bauer 농부, 찜머만 zimmermann 목수.
알고 계시겠으나 새삼 언급하는 이유, 독일 역사에서 장인정신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이렇게 독일 이름에 성으로 존재할 만큼 노동에 관해서 엄중히 생각한다는 점이죠.
사농공상이 중국에서는 단순 직업상의 분류에 불과했으나 조선에서는 신분차별의 근거가 되었던 모순으로부터 노동의식이 싹 틀 수나 있었을까요?
출처: https://yaduck.tistory.com/207 [오늘의 눈치]출처: https://blog.naver.com/destiny8708/220997199267
우리나라 성씨 순위 알아보기|작성자 유토리
출처 :덕암증손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 나너(규원)
출처 나무위키
한국의 성씨
[팩트체크]한국 1위 성씨 김씨 한국에 김씨는 왜이렇게 많을까
.성씨는 삼국시대부터 사용. 왕이나 귀족들만 사용.
.고려 왕건 - 개국공신에게 성씨와 본관 지급. 노비는 주인이 부르는 대로 불림.
.고려 문종 - 성을 붙이지 않은 사람은 과거에서 급제를 할 수 없다. 일반 백성들도 성을 갖기 위해 갖은 노력.
.조선 초까지 천인계급이나 노비 등은 성씨를 갖지 못했으며, 그 비율은 조선 초기에도 전체 인구의 40%.
.16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 전체 인구에서 성을가진 사람은 10%
.17세기 이후부터 성씨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 공명첩 - 광해군 때 재정 확보를 위해 돈을 주고 벼슬을 파는 행위가 늘어남.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폐지되고 노비들도 성씨를 가지게 됨.
...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옛 사람들은 실제 우리의 조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나라건 귀족이란 건
다 똑같아.
나약하고 위선적이고
한계 또한 명확하지.
(ft SBS 녹두꽃 백이현 윤시윤)
.... 종갓집 맏며느리? 그 호적이 진짜일까요. 돈주고 구매한 것일까요.
양반 상놈 따지지마라.나라가 위기에 쳐했을때 낮들고 죽창 들고 싸웠던게 그 민중들이니까.오히려 양반들이 백성을 등쳐먹고 나라를 팔아먹지 않았나.물론 일부 의로운 양반들이 민중을 결집 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지만최전선에서 싸운건 민초들이다.난 양반의 자손 보다 그 민초들의 자손이란게 더 자랑스럽겠다.
.. 어느 네티즌 댓글
김양식 - 김여익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김양식
- 전라남도 광양시 김여익 (1640년 인조18년 밤나무 등을 이용한 김양식법 창안).
#삼국시대 #해의 #인조 #김 #김여익
한국산 김을 일본인보다 더 많이 먹는 미국인들 - 세계인의 수퍼푸드 우리나라 김(해외반응)
https://www.youtube.com/watch?v=jcNkaPvCtxM
우리가 먹는 김은 왜 김이라고 불리는 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3K4fg5r4P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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