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상식

시계. 한국에 언제 들어 왔나요

ㅋㅌㅌ 2019. 9. 12. 00:52

1884년,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이 세계 시간의 기준점이 되었다.


1882년 이후 서구 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시간'이 조선 사회에 침투했다. 더불어 가정용과 개인용 시계도 도입되었다. 


1882년 청나라의 중재로 조선 미국 수호 조약 (조미수호통상)의 계기를 시초로 구미 각국과 수교하고, 1983년에는 민병익 등 보빙사(報聘使)를 미국 등 서방에 파견하여 임오군란(1892) 이후 비대해진 청나라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해 서재필 등 16명을 일본 도야마 사관학교에 보내어 신식구사기술을 배우고 돌아오게 하였다. 이때 조선에는 사진기가 최초로 들어온다.  


1899년 봄 관립 외국어학교 연합운동회가 열렸는데, 종목별 우승 상품은 금시계였다.


1902년에는 서울에 전문 시계포도 생겼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손목시계의 보급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그러니깐.. 

1882년 청나라의 중재로 조선 미국 수호 조약 (조미수호통상)을 시초로 고종 대한제국은 구미 각국과 수교..


이때부터 서양 문영이 들오기 시작함.

1898년에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노면전차를 운행한다. 이것은 고종이 신문물에 대해 넓은 이해와 포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전차 사업에 처음 뛰어든 것은 미국인들입니다. 


1898년에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은 우리 정부로부터 한성 시내의 전기 사업 경영권을 얻었는데, 이 사업의 연장선이 전차 사업이었습니다. 콜브란의 건의로 서울에 전차 도입을 추진한 분이 고종인데.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에 이르는 8km 구간을 1년간의 공사 끝에 40인승 8량 황실전용 귀빈차 1량을 설치하게 됩니다.


1898년 10월 18일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2월 25일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운행하는 전차 구간이 처음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