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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비숍 눈에 비친 구한말 상황과 배재 Academy 가치

ㅋㅌㅌ 2018. 7. 5. 18:15

 

 

 

 

 

 

 

 

 

배재학당(Pai Chai Academy) < 배재대학부(Pai Chai College) < 배재고등학당 < 배재중학교 < 배재고등학교 < 배재대학교(Pai Chai University)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설립자 아펜젤러 H. G. Appenzeller)

- 배재학당(培材學堂)은 1885년 8월3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서울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이며,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의 전신이다.

- PAICHAI ACADEMY 번역이 배재학당 이고 대학이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라 학당이라고 한 것이다.


1885년 8월 3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배재학당은 한국 최조의 근대신 중등교육기관으로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의 전신이다.

 

1885년 8월 3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고종황제는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1885년 헨리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을 모체로 하여 1895년 배재대학부(Pai Chai College)를 설립하였다. 같은 해 영문과 106명, 국한문과 60명, 신학과 6명의 입학으로 정규 대학과정이 시작되었다.


1909년 배재고등학당으로 인가되었다. 이후 일제 탄압으로 YMCA 안에서 잠시 명맥만 유지하다가 1925년 일제에 의하여 대학과정은 폐지되었고 1937년 배재중학교(6년)로 개칭하였다. 해방 이후에 1951년 배재중학교(3년) 및 배재고등학교(3년)로 개편하였고, 1958년 학교법인 배재학당의 인가를 받았다.

 

... 대학부 그리고 대학교. 어차피 돌고돌아 배재대학교.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이사벨라 루시 버드(Isabella Lucy Bird, 1831년 10월 15일 ~ 1904년 10월 7일) 또는 결혼후 이름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영국 잉글랜드 출신의 19세기 여행가이며, 지리학자이자 작가이다.

 

비숍이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것은 1894년 1월 63세 때이다. 이후 1897년 3월 사이에 4차례 방문하여 9개월 동안 여행하였다.

 

이사벨라 비숍은 1894년 조선에 처음 온 뒤 4년 동안 중국과 조선을 오가며 4차례에 걸쳐 조선 곳곳을 답사했다. 명성황후와 고종황제를 알현했고 제정러시아의 조선인 이민자들도 만났으며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체험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 담겨 있다. 이사벨라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은 서구인이 쓴 한국 관련 저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책으로 방대한 주제와 자료,생생한 현장감과 실증성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개화기 연구의 필독서로 인정받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w1ssV3ugYs

이사벨라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 당시 한국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한국은 양반 계급의 착취,관공서의 가혹한 세금,총체적인 정의의 부재,모든 벌이의 불안정,비개혁적인 정책 수행,음모로 물든 고위 공직자의 약탈 행위,하찮은 후궁들과 궁전에 한거하면서 쇠약해진 군주,널리 퍼져 있으며 민중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미신,그리고 자원 없고 음울한 더러움의 사태에 처해 있다." 189쪽.

그녀는 당시 한국 상황을 기술한 것을 보면 암울한 구석이 가득하다. 그만큼 조선말 대한민국의 암울했던 사회상을 추측할수 있다. 이사벨라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한국은 도로 등 인프라가 거의 없고 어업 광업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사벨라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 곳곳에서 양반과 관료들의 착취에 대해 지나치리 만큼 자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 백성들의 일하려는 욕구,잘 살려는 욕구를 좌절시킨다고 썼다. 그것은 조선말 암울했던 대한민국 상황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며 부패한 관료 체계에 대한 일침이다. 구한 말 당시 우리나라가 상시적인 부패와 계급구조와 사회적 인프라 부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바라본 당시 구한말 교육 체계는 어땠을까?

###1.
지금까지의 조선의 교육은 애국자나 사상가나 정직한 사람을 산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교육은 그렇게 수행되어 왔다. 흔히 서당에서 학생들은 방바닥에 앉아 그들 앞에 한문책을 펴놓고 몸을 좌우와 앞뒤로 흔들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중국의 고전에서 선정된 과목을 가장 크고 가장 시끄러운 소리로 읽고 암송한다. 이러한 교육은 사고력을 발전시키거나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도록 하지는 못한다. 371쪽
 
###2.
""의심할 나위도 없이 조선에서 가장 교육적, 도덕적, 지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지금도 행사하고 있는 학교는 배재대학이다." 388쪽
 
그런데 그런 그녀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뜻박의 정반대의 가치와 평가를 보내는 문구를 발견할수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서당 중심의 당시 교육과 확연히 다른 배재학당 교육은 차이점을 갖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16년 전(1897년) 조선반도를 둘러보고 "배재대학(배재학당)에는 국한문과가 있어서 고전을 가르치고 있다. 서재필 박사 등이 역사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한국어로 알려 학생들 사이에 애국심이 일고 있다"고 썼다.

실제 배재학당 내에서 한글로 새긴 < 독립신문 > 이 발간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학생회라 불리는 협성회를 조직했다. 배재학생들은 독립협회가 주관한 만민공동회에 적극 가담해 토론하며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민중들을 각성시켰다. 일본이 본격적인 식민교육정책을 준비하던 1909년에도 국어독본과 작문은 배재학당의 주요 과목이었다. 

국민시가 된 < 진달래꽃 > 을 쓴 김소월, 시인 박팔양, 당대 현실 문제를 파헤친 소설가 나도향(벙어리 삼룡이 저자), 소설가 방인근 등이 모두 배재 출신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배재학생들이 3.1운동에 앞장서고 광주학생의거 당시 배재선배학생들이 서울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주시경 선생 등의 자주적 교육정신으로 각성되고 성장한 때문임은 물론이다.

이사벨라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구한말 한국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국가는 아니다. 조선의 자원은 고갈된 것이 아니라 미개발 상태이다. 성공적 경작을 위한 조선의 능력은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기후는 멋지고, 강수량은 풍부하며, 토양은 비옥하다. 언덕과 골짜기는 석탄, 철, 구리, 아연, 금을 매장하고 있다. 1,740마일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어장은 국부의 원천일 것이다. 조선에는 근면하고 호의적인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p.423쪽.
 
"이제 조선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처음 조선에서 느꼈던 혐오감은 애정에 가까운 관심으로 바뀌었다" 라고 하면서 조선을 떠납니다.

이사벨라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마지막 문단에서 느껴지는 그녀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까?  그녀는 기본적으로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지 구한말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황을 가감없이 정확하게 전반부에 표현하고 있을뿐입니다.


#3:35 당시 대영제국 고위인사였으면서 한국에 파견돼온 이사벨라 비숍은 한국의 수입과 수출규모를 파악한 보고서. 1인당 국민소득. 일본 1135달러 23위, 한국 850달러 25위, 청나라 652달러 34위.
#6:21 대한제국 민비는 영국과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던 러시아 제국과의 손을 잡는 바람에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렵게 되어 버리는 바람에
#간도 #동북공정 #해외반응
일본에 의해 잊혀진 한국땅 발견되자, 발칵뒤집힌 상황 "미국 영국이 지원한 한국의 옛 영토"
https://www.youtube.com/watch?v=rsQapm-ATnY

 

 

 

 

"의심할 나위도 없이 조선에서 가장 교육적, 도덕적, 지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지금도 행사하고 있는 학교는 배재대학이다." 

-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388쪽.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 이사벨라 비숍 눈에 비친 구한말 상황과 배재학당 가치

... 1885년 PAI CHAI ACADEMY.. 당시 한국에는 대학이란 개념이 없어 학당이라고 부름.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배재학당이 정말 명문이어서가 아니고 동양은 미개하다고 조롱한거를 인용해놓고는...

이사벨라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암울한 당시 한국 상황을 묘사하는 특정 문구 찾아내 그게 전부인 마냥 호도하고 있군.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구한말 당시 암울했던 사회 환경을 가감없이 적나라 하게 묘사하였고, 그런 상황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배재학당에 대해서 그 충분한 값에 대해 언급하고 있을뿐이다. 

 

 

... 175.223.*... 보고 있냐?

 

 

 

 

 

 

 

 

 

 

 

 

 

 

 

 

 

 

흔하디 흔한 134년 전통과 역사에 빛나는 배재학당이 경영하는 배재대학교 품위.

최고(最古) 대학에서 최고(最高) 대학으로

 

배재는 배양영재(培養英材)의 줄임말로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란 뜻을 담고 있으며, 설립 당시부터 대학(PAI CHAI COLLEGE)으로 출발했다. 설립 초기부터 개방화된 전통을 이어받아 배재대는 40개 나라의 243개 대학 및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하게 교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현재 74개 나라에서 유학 온 726명의 외국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1885년 8월 3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고종황제는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1885년 헨리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을 모체로 하여 1895년 배재대학부(Pai Chai College)를 설립하였다. 같은 해 영문과 106명, 국한문과 60명, 신학과 6명의 입학으로 정규 대학과정이 시작되었다.

 

배재대는 교육부의 '잘 가르치는 대학' 대학자율역량강화지원사업(ACE+), 대전 유일 사회맞춤형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 학과중점형, 고용노동부의 IPP형 일학습병행제 및 듀얼공동훈련센터, 대학일자리본부(국내취업거점대학), 청해진대학 운영기관(해외취업거점대학)에 잇달아 선정돼 양질의 교육과 취·창업 인프라를 확충했다.

 

"의심할 나위도 없이 조선에서 가장 교육적, 도덕적, 지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지금도 행사하고 있는 학교는 배재대학이다." 

-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388쪽.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Let's do it together 'PAI CHAI Village'

 

Let me inside make me stay right beside you, PAI CHAI Univ. 

 

... 무릇 캠퍼스 천하를 읽지 않은 자와는 '배재대'를 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