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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녀(貢女), 조선 환향녀(還鄕女), 진헌녀(進獻女).

ㅋㅌㅌ 2017. 8. 21. 07:45

고려 공녀공남(貢女貢男), 조선 환향녀(還鄕女), 진헌녀(進獻女). 


공녀는 고려시절 원나라에 끌려간 여자들이다. 

환향녀의 경우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들이다. 진현녀는 명나라에 바쳐진 여자들이다.



고려 공녀(貢女) 공남(貢男)  


공녀 하면 고려시절 원나라에 끌려갔다. 공녀 기순녀에서 제2황후까지 올라가 인생역전에 성공한 기황후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몽골은 1225년(고종 12년)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가 피살되자 이를 구실로 고려에 침입하여 항복 조건으로 고려의 동남동녀(童男童女) 각 500명씩을 바치라고 한다. 1231년(고종 18년)에는 원나라에 항복한 귀순병들에게 짝을 찾아준다는 구실로 공녀(貢女) 1000명을 요구했다. 


'공녀(貢女)'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여인들의 자신이 나고 자란 이 땅을 떠나 먼 타국으로 보내졌다.

원나라가 고려에서 여인들을 강탈해간 것은 무려 100여 년간이다. 몽골은 1225년(고종 12년)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가 피살되자 이를 구실로 고려에 침입하여 항복 조건으로 고려의 동남동녀(童男童女) 각 500명씩을 바치라고 한다. 1231년(고종 18년)에는 원나라에 항복한 귀순병들에게 짝을 찾아준다는 구실로 공녀(貢女) 1000명을 요구했다.



조선 환향녀(還鄕女) 혹은 화냥년


공민왕의 반원정책(反元政策)으로 원나라에 대한 공녀는 끝났지만, 원을 대신해 중국과 만주를 차지한 명나라도 공녀를 요구해왔다. 고려에 이어 조선 초기에도 명나라에 여자를 바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자호란(1636~1637)이 일어났다. 청나라가 조선에게 군사3만을 지원하라는 것을 거부하자, 12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후, 기록에 따르면 50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청나라에 끌려간 누이나 아내들을 데려왔는데,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는 기구한 딱지가 붙었고, 그들은 평생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다.


대부분 임신한 상태였던 그들은 곧 '화냥년' 이라는 이름하에 멸시의 대상이 됐고, 그들이 낳은 자식들은 '호로자식' 이라는 낙인이 새겨진 채 살아가야 했다.


진헌녀(進獻女)


명나라 왕에게 바치는 진헌녀. 


태종은 명나라 보낼 처녀 간택을 담당하게 될 임시기구인 진헌색(進獻色) 설치. 전국적으로 13세 이상 25세 이하의 양갓집 처녀가 선발 대상이었다. 노비나 서얼 출신은 제외되었다. 세종이라고 해서 진헌녀 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다. 


다문화 가정에 일부 안좋은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고려 공녀(貢女), 조선 환향녀(還鄕女), 진헌녀(進獻女) 알고 있을까? 공녀공남(貢女貢男)은 고려시절 원나라에 끌려간 남자여자들이다. 환향녀의 경우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들이다. 진현녀는 명나라에 바쳐진 여자들이다.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후, 기록에 따르면 50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그리고 임재왜란 정유재란때 일본의 엄청난 부녀자들에 대한 추행과 강간. 과연 당신의 족보는 순수혈통 한국인일까?



이기원 바른정당 충남도당 대변인이 16일 

"고려에 공녀, 조선에 환향녀, 일정에 위안부 그리고 군정에 기지촌녀 등 모두 공통점은 

한국 여성의 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역사"라고 말했다.

... 이게 말이야, 방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