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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학에 가는가

ㅋㅌㅌ 2017. 12. 21. 16:23



■ 김영호 배재대 총장 - ‘왜 대학에 가는가’ 컬럼비아대 앤드루 델반코 교수 지음, 이재희 역 <문학동네>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지금 대학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이고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진지하게 답을 주는 책이다”.


십여 년 전 ‘미국 최고의 사회비평가’ ‘올해의 뉴욕 주 학자’로 선정된 바 있고, 2012년에는 고등교육에 대한 그간의 저술을 인정받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인문 메달’을 수여받았던 앤드루 델반코 교수가 지었다. ‘왜 대학에 가는가[는 고등교육 전반에 대한 탁월한 안내서이자 비판서로 평가 받는다.


김영호 총장은 “대학인으로서 변화하는 대학환경을 짚어보고 책이 제시하는 대학이 가야할 길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 대학 총장들이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싶은 책은? 중에서



‘왜 대학에 가는가’ 

앤드루 델반코, 『왜 대학에 가는가』 , 문학동네, 2016.


1945년 대한민국의 대학생 수는 9960명으로, 지금 기준으로는 1개 대학의 정원에도 못 미치는 규모였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의 비율은 1970년에 9%였고, 1980년대까지도 30%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진학율은 1990년대 들어 두 배로 껑충 뛰었고, 2009년 (등록자 기준으로) 77.8%로 정점에 달했던 대학진학율은 지난해 70.8%를 기록했다. 광복 이후 근대사회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이동’의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였다. 지난 70여 년의 대학진학율 그래프에는 대한민국의 ‘사회 이동’ 욕망이 상징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문제는 ‘대학’에서 시작해 ‘취업’과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회 이동 구조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7년째 OECD 회원국 중 대학진학율 1위를 기록중이지만, 고등교육 이수자 고용률은 76%로 OECD 회원국 중 밑에서 다섯번째이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은 외형적으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이뤘지만, 그 역할과 내실에 대한 의문은 거꾸로 점차 증폭되고 있다. 국가는 취업난을 타개하고자 잇따라 대학 구조조정 대책을 내놓고 대학은 앞장서서 이 대책을 실행하려 하지만, 취업 중심의 대학 구조조정안을 반대하는 건 역설적으로 대학생들이다(최근의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 프라임 사업, 코어 사업 등을 둘러싼 학교-학생 간 갈등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한 구조조정안으로 지금의 취업난이 해소될 수 없다는 판단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무엇보다 대학은 취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학을 둘러싼 이 역설을 이해하고 해소하자면 우리는 ‘대학’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지금 대학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이고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등등. 컬럼비아대 영문과 교수 앤드루 델반코의 『왜 대학에 가는가』는 이 한보따리의 근원적 질문들을 던지고 답할 목적으로 쓰여졌다. 델반코 교수가 염두에 둔 현실은 당연히 미국의 대학과 대학교육에 관한 것이지만, “그가 제기하는 것은 동시에, 에누리 없이, 우리 대학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추천사를 쓴 도정일의 말마따나 앤드루 델반코의 비판적 분석은 “에누리 없이” 한국 현실에 조응한다. 델반코가 제기한 미국 대학의 문제는 지금 전 세계 공통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대학진학률이 70퍼센트를 넘어서는 소위 ‘대졸자 주류사회’ 한국에서 “왜 대학에 가는가?”란 질문은 “몰라서 묻느냐?”란 반문이나 듣게 할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하자. “다들 가니까.” 대학졸업장을 필수요건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묵계 혹은 암묵적 합의가 작동하는 거라고 해도 좋겠다. 대학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진학하는 학교’ 정도로 간주한다면 대학의 특별한 의미를 찾는 것이 별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모든 질문은 언제나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왜 대학에 가는가’란 질문도 마찬가지다. 그 질문에는 대학의 가치와 의미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곧 “진짜 세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의 성격”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왜 대학에 가는가?’에 대한 오늘날의 일반적인 답으로 저자는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경제적인 이유이다.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아지면 국가적으로 경제력이 증진되고 개인적으로도 경제적 경쟁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치적인 이유이다. 시민들이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사회에서 중요하고, 이를 위해 대학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의 필요성이다. 실용주의적인 교육이 아닌 인문학과 과학을 아울러서 진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대학에서 누구나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전문화된 지식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이 교양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 대학에서 ‘민주시민의 육성을 위한 교양교육’ 같은 것이 가능할까? 전공수업을 듣기도 벅차 ‘꿀교양’ 을 찾아다는 우리에게 교양 수업은 졸업하기 위해 해치워야하는 것일 뿐이다. 민주시민을 육성하거나 하는 문제들은 대학에서 이미 뒷전으로 간지 오래이다.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를 예로 들자면, “연소득 10만 달러 이상 가정의 학생들의 전체 평균 SAT 점수는 5-6만 달러 가정의 학생들에 비해 100점 이상 높다.” 부모의 경제력과 학생들의 점수 사이에 직접적인 상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지만 돈이 많은 부모는 자녀의 지적 능력을 끌어올릴 수는 없더라도 점수는 끌어올릴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대학은 부와 기회의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더 악화시키게 된다. 이는 한국의 서울대학교 강남구 합격률이 높은 점과 로스쿨 진학생 부모님의 재산이 높은 점과 궤를 같이 한다.


대학의 핵심 이념 가운데 하나는 “남을 돕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돕는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현재의 많은 대학들은 “좋은 운을 타고난 사람이 덜 가진 사람에게 베풀며 살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지 못함으로써”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앤드루 델반코이 말합니다.


“대학은 젊은이들이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동료들과 또 자기 자신과 끝까지 싸우는 곳이어야 하고, 자신의 이익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꼭 상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대학을 잘 보존하고 지켜내 후대에 물려줄 책임이 있다. 민주주의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당신은 왜 대학에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