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때 문신들이 항상 무신을 무시하다가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연회를 하고 있는데 정중부 장군 수염을 촛불로 태운 역사가 있다.
1144년 인종 앞에서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촛불로 정중부의 수염을 태우자 화가 난 정중부가 김돈중을 치고 욕보였다. 이에 김부식이 노해 왕께 정중부에게 매질을 가하라고 주청했다. 이 일로 김부식은 모든 무신들의원한을 사게 되었는데, 1170년 정중부가 난을 일으켜 문신들을 제거할 때 김돈중은 처형된 후 목과 사지가 잘린 상태로 저자거리에 매달렸으며 이미 죽은 아버지 김부식은 부관참시를 당했다.
고려시대 때 김부식의 아들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이 있습니다. 정중부는 그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가 무신정변을 일으킨 그 당일날 잡아 죽였습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장난으로 수염을 태운 것 같지만 당사자한테는 상대방을 죽일 만큼의 큰 원한인 것입니다. 문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김부식은 역사적, 학문적인 평가에 많은 논쟁점을 안고 있다.
신라계 출신으로 삼국시대를 신라 중심으로 바라보았다는 점, 묘청의 난을 진압해 고려 국시인 '북진정책'을 사실상 중단하게 한 사대주의자라는 점, 또한 오만한 태도로 무신의 난이 일어난 계기를 빚어낸 점 등에서 김부식에 대한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고구려의 북방경영, 백제의 왜국과의 교류 그리고 발해 역사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점에서 <삼국사기>는 김부식의 사대주의적 사고의 발로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김부식에게 향한 더욱 중요한 비판은 <삼국사기>보다 이 책을 편찬하고 난 뒤 당시 남아있던 각종 기록서들의 훼손 행위에 있다. 훗날 승려 일연은 이를 인식해 <삼국유사>를 편찬했다.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해 왕건 이래 고려의 국시인 '북진정책' 의 사실상 중단을 가져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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