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공간

'한끼줍쇼' 3주년 맞아 하와이 특집.

ㅋㅌㅌ 2019. 12. 12. 15:26





하와이...

당신은 하와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한끼줍쇼', 가슴 뭉클한 재외동포 특집 3탄..우리가 알던 하와이가 아니다

한끼줍쇼 첫방송: 2016년 10월 19일 첫방송

한끼줍쇼 1주년:  2017년 7월 일본 요코하마와 신주쿠

한끼줍쇼 2주년:  2018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

한끼줍쇼 3주년:  2019년 12월 미국 하와이


매년 ‘재외동포’ 특집을 마련하는 ‘한끼줍쇼’는 2017년 일본 요코하마와 신주쿠, 201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 편에 이어 미국 하와이 땅을 밟았다. 하와이 한인 이주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재외동포들을 만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한끼줍쇼는 하와이에서 3주년 특집으로 진행됐다. 2016년 방송을 시작해 올해로 3주년이 되는 것은 알겠지만 첫 방송 날짜인 10월19일과 전혀 상관없는 12월에 그것도 하와이라는 여행지는 뜬금없는 구성인 듯 보였다.


그러나 '한끼줍쇼'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하와이'라는 부제를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하와이로 노역을 하기 위해 왔던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어 하와이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 의연금을 기부했지만 이후 인정받지 못하며 국내 재입국이 불가하게 된 이유까지 설명했다.


하와이는 제주도의 다섯배 정도 크기이고, 인구는 50만명 정도이다. 미국은 50개의 주(states)와 1개의 특별구(district)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와이는 미국의 50개 주중 50번재 주입니다. 알로하주 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호놀룰루의 의미는 "쉼터의 장소"라는 의미이다.



한끼줍쇼 하와이 특집 김민정 김영철 출연 (155회)


11일 방송된 JTBC '한끼줍쇼'는 방송 3주년을 맞아 하와이 특집 편을 선보였다. 이날 하와이 특집 1편에는 배우 김민정과 개그맨 김영철이 밥동무로 출연해 이경규, 강호동과 한 끼에 도전했다.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

- (미국) 11월 넷째주 목요일, (캐나다) 10월 둘째주 월요일

- 한 해의 수확과 신의 은총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미국의 국경일.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의 축제. 

- 1621년 수확의 풍요함을 감사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축제를 3일 동안 열고 근처에 사는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초기의 개척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9개의 김치 회사를 운영중인 하와이 주민. 원래 운영하던 한인 분이 중단 할려는 것을 넘겨받아 운영.


나 정말 이 프로 못해 먹겠다.??

방송국 놈들..

통역가로 투입된 김영철이 통역안하면 뭐라하고 또 통역하면 뭐라하고.. 통역도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는 걸 절감. 한끼줍쇼 등장초기 나쁜 방송국놈들 대사처럼 최근 예능 경향이 멤버들이 제작진를 자연스럽게 디스저격하는 예능케미가 자주 등장한다. (ft tvN 신서유기7, KBS2 1박2일, JTBC 한끼줍쇼








하와이 한인 타운 '키아모쿠 거리'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이민자들이자 1세대 이주민들이 잠들어 있는 '푸우이키 공동묘지'


'한끼줍쇼'가 하와이에 얽힌 아픈 역사를 살펴봤다.


이날 이경규는 강호동과 함께 하와이 풍경을 보던 중 도산 안창호 선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경규는 "안창호 선생이 미국 유학을 가던 중 하와이 섬을 발견했다. 하와이를 보고 크게 감동한 안창호 선생은 자신의 호를 도산이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경규, 강호동은 할레이바 거리에 있는 한 식당에서 김민정을 만났다. 김민정은 '한끼줍쇼' 출연 이유를 묻자 "최근 출연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하와이와 인연이 시작된 1903년 고종 황제 시대를 다뤘었다. 남 얘기 같지 않았다. 아직도 그 때 사람 같고,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9월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호텔 '글로리' 사장 쿠도히나 역으로 열연을 펼쳤던 김민정은 "'미스터 션샤인'과 하와이가 1903년 고종 황제 시대로 접점이 있다. 남 얘기 같지가 않더라. 아직 그때 사람 같은 느낌이 있다. '한끼줍쇼' 하와이 특집 얘기를 듣고 무조건 출연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남다른 의미를 전했다.


이후 규동형제와 김민정은 대한민국 최초의 이주민 1세대가 잠들어 있는 푸우키이 공동묘지를 찾았고, 이와 관련된 역사가 전해졌다. 


푸우이키 공동묘지는 1903년 사탕수수 수확을 위해 하와이로 이주한 1세대 한인들이 잠든 곳이다. 조선인들은 부푼 꿈을 안고 하와이로 이주했지만, 채찍을 맞으며 10시간 이상 고강도 노동을 해야 했으며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그렇게 노동을 하며 번 돈은 하루에 약 1달러 남짓이었다.


1903년 미국은 값싼 노동력으로 사탕수수를 수확하기 위해 고종의 허가 아래 조선 노동자들을 모집한다. 당시 7400명의 조선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했으며, 이는 조선 첫 해외 이주이기도 하다.


1903년 1월 13일, 인천에서 일본을 거쳐 하와이로 도착한 배 한 척에는 102명의 한인이 타고 있었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탕수수 밭 노동자가 필요했던 미국은 고종의 허가 아래 조선 대규모 노동 이민을 모집했고, 1902년부터 3년간 7,400명의 한인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이로써 하와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이주민 역사를 간직한 땅이 됐지만, 노동자에 대한 대우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경규는 푸우이키 공동묘지를 보던 중 어린 아이들의 묘지를 발견했다. 태어난 지 몇 개월만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 세 사람은 이를 크게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경규는 묘지들 속 서있는 동상 하나를 가리켰다. 세 사람은 동상에서 묵념을 했고, 이경규는 "1903년 1월 13일 3시 30분 호놀룰루 항에 배가 도착했었다. 그걸 기리기 위한 동상 같다"고 전했다.


묘지를 둘러보던 김민정과 규동형제는 4개월부터 6개월, 2년, 심지어는 2일밖에 못 살고 세상을 떠난 아이의 묘비를 보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과거 앙드레김 패션쇼 스케줄을 위해 하와이에 왔었지만 제대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던 김민정은 "모르고 왔을 때보다 울림이 있다"고 말했다.


하와이 한인 타운 키아모쿠 거리를 소개하고 이들은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이민자들이자 1세대 이주민들이 잠들어 있는 푸우이키 공동묘지를 찾아 우리나라 이민의 역사를 되짚었다. 이어 카할라 지역을 찾아 식사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거리에서 한인 모녀를 마주친 강호동과 김영철 두 사람은 '한끼줍쇼' 촬영 취지를 알리고 숟가락과 함께 한 끼 식사를 권했다.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모녀는 "오늘 추수감사절인 만큼 먹을 것도 많다"고 전하며 밥동무를 집으로 초대했다.


모녀를 따라가 들어가게 된 집 마당에는 한반도 모양의 정원이 조경되어 있어 놀라움을 안겼다. 하와이에서 극적으로 한 끼 도전에 성공한 강호동, 김영철은 추수감사절 대표 음식 칠면조와 미국식 진수성찬으로 풍성한 식사를 시작했다.


한반도 모양을 닮은 마당내 정원이 눈에 띈다. 어머님이 직접 나무를 심고하여 한반도 모양을 형상화 하여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네 사람은 이경규·김민정, 강호동·김영철로 팀을 나눠 본격적인 한 끼 도전을 시작했다.


네 사람은 한국 동포가 거주할 만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한국인이 거주한다는 단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도전은 쉽지 않았다.


이윽고 거리에서 한인 모녀를 마주친 두 사람은 '한끼줍쇼' 촬영 취지를 알리고 숟가락과 함께 한 끼 식사를 권했다.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모녀는 "오늘 추수감사절인 만큼 먹을 것도 많다"고 전하며 밥동무를 집으로 초대했다.


모녀를 따라가 들어가게 된 집 마당에는 한반도 모양의 정원이 조경되어 있어 놀라움을 안겼다. 하와이에서 극적으로 한 끼 도전에 성공한 강호동, 김영철은 추수감사절 대표 음식 칠면조와 미국식 진수성찬으로 풍성한 식사를 시작했다.


그 시각, 이경규와 김민정은 동포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인근 현지 주민들에게 도움을 구해 동포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한 끼 설득이 쉽지 않았다. 이때 이경규와 김민정은 한창 추수감사절 파티가 열리고 있는 한 주택을 찾았다. 두 사람을 알아본 한인들은 반갑게 인사했고, 간이로 한 끼를 수락했다. 이어 2차 관문으로 집주인이자 파티 주최자 부부에게 허락을 받은 이경규, 김민정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홈파티를 함께했다.



한끼줍쇼 하와이 편은 우리가 몰랐던 휴양지 하와이 속 1세대 이주민들의 어려웠던 삶과 그들의 역사를 재조명했고, 재외 동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인생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3주년 특집으로 하와이를 방문한 '한끼줍쇼'. 하외이에 숨겨진 역사를 돌아보는 이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울렸다.






하와이의 한반도를 찾아서..?

강호동 김영철 한끼준집 정원에 한반도 있었는데. 한반도란 무슨 의미일까. 


한편, 오는 18일 방송되는 JTBC '한끼줍쇼 하와이 특집 2탄'에서는 배우 임시완과 여진구가 함께 출연해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하와이 곳곳을 다니며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다룰 것으로 예고됐다.




'하와이의 한반도를 찾아라' (ft 하와이카이)


12월 18일 방송된 JTBC '한끼줍쇼' 하와이 특집 2탄으로 꾸며지며 배우 여진구와 임시완이 밥동무로 출연했다. 


두 사람은 하와이에 자리한 한반도 지형 마을을 찾아 한 끼 도전에 나섰다. 특히 임시완은 전역 후에 진행하는 첫 예능 출연이어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날 강호동, 이경규는 쿠알로아 랜치에서 여진구를 만났다. 강호동은 여진구를 보자마자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다. 화제의 주인공이 되니 눈이 굉장히 깊어졌다"며 극찬을 쏟아냈다. 여진구는 계속된 강호동의 칭찬에 부끄러워했다. 쿠알로아 랜치 일일 가이드로 나선 여진구. 여진구는 "하와이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다"고 고백하며 허당끼를 발산해 웃음을 유발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쥬라기 공원' 촬영지를 구경하던 중 똥을 밟았고, "밟으면 좋은 거 아닌가"라며 엉뚱한 매력을 드러냈다.


이어 세 사람은 임시완을 만나러 갔다. 유창한 영어로 현지인들과 어울리던 임시완과 만난 여진구와 규동형제. 특히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호흡을 맞췄던 여진구는 한걸음에 다가가 임시완을 끌어안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하와이 오하우 섬

쿠알로아 렌치(Kualoa Ranch)

- 와이키키해변 쿠히오 비치(Kuhio Beach)

다이아몬드 헤드 (Diamond head)


하와이의 수도인 호놀룰루는 오하우섬의 남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다. 하와이의 8개 섬중에서 세번째로 큰 오아후섬은 제주도보다 약간 작은 정도이다. 호놀룰루 시내 남동쪽에는 하와이 관광의 중심이자 세계적 명성의 와이키키 비치가 펼쳐져 있다. 


쿠알로아 랜치(Kualoa Ranch)

하와이주 오하우 섬 북동쪽에 위치한 목장이다. 쿠알로아 랜치는 고대 하와이 사람들이 오하우 섬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긴 곳으로 옛날부터 왕족들이 역사 교육을 받고 병법을 수련한 곳이라 한다. 쿠알로아 랜치는 다양한 영화들의 촬영지로도 이용되고 있다. 기타 프로그램들로는 승마, ATV, 영화촬영지 탐방, 보트 투어, 시크릿 아일랜드 투어 등이 있다.


광활한 대지 위에 열대우림과 웅장한 산맥,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다양한 자연 색을 자랑하는 쿠알로아 랜치는 '긴 허리'라는 뜻을 품고 있는데 용이 하도 설치는(?) 바람에 산이 분노하여 두 동강을 내었고 그 몸통 부분이 '쿠알로아랜치'가 되었다고 한다. 

... 용이라는 동물은 동양에만 믿는 동물인데. 하와이 지역명 쿠알로아 렌치 지역명에 용 미신이 들어간거 보니 하와이 동양 이주민들이 만들어낸 지역명 역사.


강호동 이경규와 임시완 여진구는 한 끼 도전에 앞서 하와이 쿠알로아 랜치를 둘러봤다. 이들은 영화 ‘쥬라기 공원’ 촬영지를 방문했고, 인승샷을 찍고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행복을 느꼈다. 강호동은 “여기에 킹콩 똥이 있다”고 말했고, 여진구는 강호동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실수로 똥을 밟았다.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듯 했던 여진구는 이내 “이것을 밟는 게 좋은 징조 아니냐”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쿠히오 비치(Kuhio Beach) 

- 해변이 두개의 벽으로 나뉘어 '연못' 이라는 별칭을 가진 해변. 

- 하와이 오아후 섬 와이키키에는 각 해변 마다의 이름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 많고 방파제 때문에 누구나 쉽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쿠히오 비치(Kuhio Beach).


쿠알로아 랜치 '쥬라기 공원'을 촬영한 곳을 관광한 이후 임시완이 있는 쿠히오 비치로 향했다. 쿠히오 비치에서 원어민들과 함께 비치볼을 즐기고 있던 임시완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눈길을 모았다. 이날 임시완은 하와이의 독립역사에 대해 공부해오는 등 철저한 준비성을 보여줬고 난데없는 소나기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역사 지식을 뽐내며 ‘한끼줍쇼’의 공식 ‘이문학’ 이경규의 자리를 위협하는 ‘임문학’으로 등극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의 만남에 수준급 영어 실력을 선보여 눈길을 사로잡았고,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경규와 강호동을 대신해 막힘없이 대화를 이어가며 매력을 발산했다. 


다이아몬드 헤드 (Diamond head)

제주도의 성산일출봉과 같은 원리로 화산 폭발 이후에 생성된 하와이의 주요 관광지이다. 정상까지는 왕복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소요된다. 와이키키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트레킹 중에는 화장실이 없으며 탈수되지 않도록 물을 반드시 챙기도록 한다.









#한행운 #하와이대학교 #한국어학과 #한국역사학 #이승만 활동 및 망명지

#하와이 이민 역사

#블랙 프라이데이 #강호동 #우와!!! #하와이카이 #한반도모양


#한행운 #하와이대학교 #한국어학과 #한국역사학 #이승만 활동 및 망명지

여진구와 임시완은 규동형제와 함께 '하와이의 한반도'라는 힌트의 답을 찾기 위해 하와이 주립대학으로 향했다. 여진구와 임시완은 강호동, 이경규와 함께 한국학 연구센터를 방문하기 위해 하와이 주립대학을 찾았다. 이곳에서 한 현지 팬은 여진구와 임시완을 목격하고 소리를 지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지인은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면서 "정말 팬이다"라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현지인은 "나는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어서 말을 잘한다. 이름은 한행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만나 영광이다. 꿈같은 일"이라며 감격했다. 한국어를 잘 하는 현지 팬에게 임시완과 여진구는 팬서비스를 해 주며 고마움을 전했다.


#블랙프라이데이 #하와이카이 #한반도모양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로, 1년중 가장 큰 폭의 세일 시즌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후 이경규, 강호동, 여진구, 임시완은 하와이 한국 지도 마을인 하와이 카이로 향했다. 우연의 일치로 한반도 모양의 마을이 생긴 곳이었다.








하와이 주립대학 - 한국학 연구소 

하와이 한인들의 독립운동사

하와이의 의연금이 없었다면 임시정부 운영이 어려웠다

하와이 애국단 7명 -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의거 자금 지원

고국이 그리웠지만, 영사관에선 비자를 주지 않았다.

하와이 한반도 모양의 마을인 '하와이 카이'


#우리가 몰랏던 하와이

#하와이 이민 역사 #한국학 연구센터 #하와이 독립운동 #이승만


하와이 주립대 한국학 연구센터를 들러, 사탕수수 농장에서 시작한 하와이 한인들의 독립운동 역사에 대해 들었다. 김창환 목사는 당시의 자료를 꺼내 보여주며 “하와이 이민자들이 모은 의연금이 없었다면 임시정부의 운영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인들은 오직 독립을 바라며,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모두 독립자금에 보탰다는 것이다. 특히 “하와이 애국단 7명이 당시 1000달러를 모았다”는 김 목사의 말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7인은 영사관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아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고 해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1902년 12월 22일, 하와이로 떠나는 조선인들을 태운 갤릭호가 제물포항에서 121명을 태우고 출발했다. 1903년 1월 13일 최종 102명(통역관 2명 제외)이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하와이에 도착한 후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했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채찍으로 맞아가며 일해야 할 정도로 가혹한 노동 조건, 낮은 임금, 그리고 차별이었다. 주한 미국 공사 알렌이 조선인 고용을 주선했고, 그렇게 해서 1905년까지 65차례에 걸쳐 조선인 7,226명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1910년 자치단체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회가 설립되었고, 1914년 박용만은 미 하와이에서 대조선 국민군단을 결성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한편 미주 교민들은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가장 큰 재정 지원을 하였으며 한국 광복군 창설에도 큰 보탬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의 일부는 미국 본토, 멕시코, 쿠바 등지로 이주해 갔다. 하와이 교민들은 학교와 교회 등을 세우고 자치 단체를 만들어 한인 사회를 발전 시켰다.


하와이는 한일합방의 굴욕 속에서 상해 임시정부의 재정을 지원한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으며, 민족 교육 운동의 성지였다. 1954년에 설립된 인하대는 인천과 첫 해외 이주민의 역사 하와이 첫 음을 따서 교명을 지었다. 대학 설립 자금은 우남 이승만이 1918년부터 운영한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매각대금과 정부지원금, 그리고 시민 성금이 포함됐다.


한국학 연구센터에 간 네 사람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시작된 하와이 한인들의 독립운동사를 알게 됐다. 김창환 목사는 "하와이의 의연금이 없었다면 임시정부 운영이 어려웠다"라고 밝혔다.


그는 "하와이 애국단 7명이 그 당시 천 불을 모았다"라고 밝혔다. 지금으로 치면 약 12억 원 정도 되는 돈이라고. 그는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의거 자금을 7분이 댔다. 그분들은 고국이 그리웠지만, 영사관에선 비자를 주지 않았다. 얼마나 원통했겠냐"라고 말해 먹먹함을 안겼다. 





임시완 강호동 팀 - '땡스 기빙데이라서 모든 가족이 모인다'

#혹시 불편해 하실까 봐 상의할 시간을 드리기로 하는 강호동.

#김치는 하와이 1편에서 등장했던 하와이 김치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표 김치인가 

#역시 인사는 Hug 알로하~ 

#강식당 경력으로 강호동 이제 한끼준집에서 요리하는건 기본


강호동이 문을 두드린 집은 한인 대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는 이들을 보고 크게 반가워했고 문을 열어주며 행복해 했다.


호동이 두번째 집에서 바로 한끼줍쇼를 성공했지만, '땡스 기빙데이라서 모든 가족이 모인다'는 말에 "잠깐 가족들과 상의 하시라"고 했다. 이에 남동생이 "저희 누나 집이라서 제가 결정을 못할 거 같은데 통화 해보시겠어요?" 라고 했고, 호동에 이어 시완과 통화한 후 "남동생이 장난 치는 줄 알았는데 진짜네요"라고 하고 한끼를 허락 했다. 연이어 가족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호동과 시완이 집안으로 입성했다. 


해당 가정의 텃밭에는 각종 쌈채소가 심겨져 있었다. 강호동은 쌈 채소를 보자마자 흥분했고 강호동이 주인 어르신과 쌈 채소를 따는 시간에 임시완은 주방에서 따님의 요리를 도왔다. 시완이 부엌에서 어머니의 식사 준비를 돕는 사이 호동이 아버지와 함께 마당에 있는 텃밭을 구경했다. 둘째 딸이 등장 했다. "실례가 안된다면 직업이 어떻게 되시는 지 알 수 있냐"는 시완의 말에 딸은 "조그마한 골프 가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시완은 "군대에서 아침으로 너무 맛있는 메뉴들이 나와서 제가 취사병들한테 레시피를 배워서 해먹고 있다"고 했다.


호동이 텃밭 구경을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와 식사 준비에 함께 손을 보탰다. 시완은 "네모낳고 긴 통에 게장이 들었다"는 말만 듣고도 척척 식탁을 차려냈다. 임시완은 "군대에 있을 때, 아침 식단 중 너무 맛있는 메뉴가 있었다. 그래서 전역하기 전 조리병한테 메뉴를 배워 나왔다. 돼지고기 김치볶음, 비엔나 소시지 조림 이런것을 잘 한다"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어제 LA갈비 보다 맛있는 식탁이 됐다"는 호동이 인증샷을 찍었다. "이거 역대급 인증샷이겠는데"라고 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후 임시완은 해당 가정에서 먹방 미생에서 완생으로 거듭나며 한국의 맛을 느꼈다. 강호동 역시 쌈 채소 먹방을 펼치며 즐거워했다. 임시완은 주인 어르신에게 "대단한건 아니고 한국에서 온 소주 같은 것이다"라며 한국에서 사 온 술을 선물했고 어르신은 크게 기뻐하며 "그러지 않아도 한잔 생각났었는데"라며 함박웃음을 지어 눈길을 끌었다.


호동이 "하와이 호텔에서 어머님이 오래 있으시면서 제일 잘 만드셨던 요리는 뭐냐"고 물었고 엄마는 "은대구찜"이라 고했다. 이에 호동은 "주방 일이 너무 힘들다. 근데 어머님은 피부가 너무 좋으시다"고 했다. 이에 엄마는 "나는 음식을 하면서 열기를 얼굴로 받는다. 그게 도움이 된 거 같다"고 했고, "스팀 마사지 인가요"라는 시완의 말에 호동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둘째 딸이 "하와이는 첫 느낌이 딱 있었다. 와 좋다가 아니라, 쎄 했다. 비행기가 좋지도 않고 너무 힘들었다. 근데 내리자마자 날씨도 그렇고 쎄 했다. 지금은 내 고향이다. 가끔 한국에 가고 그래도 하와이 만한 곳은 없다. 저는 다른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언니나 동생들은 다른 곳에 살았는데 저는 하와이에 계속 있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영어를 못하시니까 누군가는 챙길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라고 하와이 생활의 고충을 털어놨다. 




역시나 인사는 Hug 알로하~ 

강호동으 손가락 들어 올리며 알로하~

그러나 한끼준집 둘째딸은 껴안으며 알로하~ ㅎㅎ


알로하(Aloha)는 하와이에서 쓰이는 인삿말로 안녕을 묻거나 만났거나 헤어질때 사용된다. 알로하에는 hello, goodbye, I love you 등 다양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불편해 하실까 봐 상의할 시간 드리기로...

문을 열자마자 한끼줍쇼에서 오셨구나! 라며 반갑게 인사하는 어르신. 그러나 집에 도착전인 어머님이 불편해 하실수도 있기에 상의할 시간을 드리겠다며 문을 닫고 대기하는 강호동. 한끼줍쇼 제작진과 강호동, 임시완의 저녁 한끼 부탁하지만 방문한 가정의 불편함을 최대한 덜어주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수 있었다. 


지난주 하와이 1편에서 방문한 집에 제대로 인사도 없이 무작정 한끼 시도한다고 기레기들이 지껄이던데.. 이런건 뉴스화 된게 한개도 없구나. 사람은 보이고 싶은대로 보이고 믿고 싶은대로 믿을뿐이다.




한국보다 더 한국스러운 하와이의 저녁 밥상 (ft 한끼줍쇼)


 

 

상추는 여성들에게 좋다고 한다. 상추에는 비타민 A와 비타민 B군, 철분과 칼슘, 히토신, 리신 등의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여성들에게 필요한 여러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다. 철분과 필수 아미노산은 빈혈을 예방하며, 칼슘과 칼슘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 A는 갱년기 이후 여성들의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적이다. 게다가 비타민 B군은 피부 노화를 막고 머릿결을 윤기 있고 부드럽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며, 상추는 변비로 고생하는 여성들에게 매우 좋다. 상추에 풍부한 섬유질이 장 활동을 도와 배변을 부드럽게 하고 변비 때문에 생기는 독소를 해독해주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만 먹는 음식

1. 깻잎... 전세계적으로 참깨는 제법 흔하게 먹지만 들깨를, 그것도 잎을 먹는 나라는 한국 이외에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외국인들에게 깻잎의 향과 맛은 아주 고역이다.

2. 도토리 묵... 다람쥐의 주식으로 알려진 도토리를 가루로 만들어 묵을 쑤면 도토리묵을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만 만들어 먹는 토종 음식으로, 텁텁하면서도 고유의 쓴 맛이 난다. 외국인들은 젤리 같은 식감에 도토리가 재료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작고 딱딱한 도토리가 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3. 미더덕...미더덕은 미더덕의 유사종인 오만둥이와 함께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먹는다고 한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먹지만 먹는 사람은 교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누가 제일 특이한 걸 먹는가를 주제로 외국인과 대화하면 한국인이 이긴다고 하는데 이 미더덕과 번데기 때문이다. 
4. 골뱅이

5. 간장게장...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이나 간장 등에 절이는 요리법은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요리법이다. 그러나 간장게장처럼 살아있는 게를 간장이 절여 먹는 간장게장은 한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토종 음식이다. 특히 살아있는 게를 염장한다는 건 외국인들이 적지 않게 놀랄 수 있다.

6. 번데기... 양잠 산업 자체야 고대부터 해왔지만 번데기를 식용으로 사용한 역사는 의외로 짧다. 생각보다 최근에 먹기 시작한 음식이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따라 활발해진 양잠 산업의 부산물로 발생한 번데기를 처리할 방도를 찾다 조리해서 먹게 된 것이 시초이다. 번데기는 마른 오징어, 닭발, 홍어 등과 함께 외국인들이 대표적으로 손꼽는 한국의 혐오식품으로, 사람들은 흔히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벌레를 조리하여 음용하는 것에 빗대어 번데기를 혐오식품이라고 일컫는다

7. 참외... 외국에서 한국식 멜론이라고 불리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외국에서는 참외를 달게 개량하지 않아 많이 찾지도 않을 뿐더러 대부분 참외보다는 당분이 좋은 멜론을 먹는다.




이경규와 팀을 이룬 여진구는 한 끼 성공에 난항을 겪었다. 경규와 진구는 "코리안 네이버"를 찾아서 동네를 수소문 했고, 이에 한 가정을 찾았지만 그들은 이미 밥을 다 먹은 뒤였다. 이에 경규가 "아쉽지만 밥을 다 먹은 뒤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룰이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인의 집을 4분이나 찾았지만, 모두 한끼에 실패 했다  이에 경규는 "이제 그냥 일단 막 두드려보자"고 했고 모두 다 거절 당했다. 1시간을 헤매다 극적으로 성공한 두 사람. 평소 낯을 가린다던 여진구는 집주인과 '요리'라는 공통점을 찾았고, 수다를 떨었다.


여진구는 집주인 아버님을 도와 식사를 함께 준비했다.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는 아버님의 말에 "저도 최근 작품 '호텔 델루나'에서 호텔 지배인 역할을 맡았었다"며 반가워하기도. 부부와 두 명의 아들까지 단란한 네 식구와 식탁에 마주앉은 여진구, 이경규는 하와이 정착 및 러브 스토리 등을 들으며 흥미로운 한 끼를 즐겼다. 이후 여진구는 한 끼를 선사해준 집주인 부부에게 무궁화, 카네이션 모양 캔들을 선물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방송 마지막, '칭찬해 서운해' 코너가 진행됐다. 이 때 여진구는 이경규에게 "솔직히 오늘 실패하는 줄 알았는데 옆에서 계속 포기하지 말자고 해주셔서 감사했다"고 고백해 폭소를 자아냈다.






한끼준집 하와이편 통해 281,282호가 탄생 되었다. 잘생긴 외모는 물론 엉뚱하고 장난기 넘치는 입담을 자랑한 여진구, 임시완. 두 사람의 하와이 한 끼 도전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임시완과 여진구는 각자 준비한 선물과 더불어 ‘한끼줍쇼’에서 특별히 마련한 선물까지 가족들에게 전달하며 감사를 표했다. ‘한끼줍쇼’는 하와이에서 재외동포 특집을 기획해, 하와이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우리의 깊은 역사가 담긴 곳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하와이에 대해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157화 12월 25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 윤택, 이승윤

158화  1월  1일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 송가인, 홍자


다음주에는 크리마스특집으로 이상윤, 윤택.. 자연인특집. 광주광역시 편이 방송됩니다. 그리고 송가인X홍자, '한끼줍쇼' 뜬다. 2020년 1월 1일 방송 예정이다. 


한끼줍쇼 하와이편은 시청률 1회 4.235%, 2회 3.739% (AGB)가 나왔습니다.


한편 ‘한끼줍쇼’는 재외동포 특집으로 지난 2017년 일본 요코하마와 신주쿠, 201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 편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 하와이에서 한 끼에 도전하게 됐다. 더불어 조선 최초의 이민자인 하와이 한인 이주 역사를 돌아봤다.





한끼줍쇼 하와이 편은 우리가 몰랐던 휴양지 하와이 속 1세대 이주민들의 어려웠던 삶과 그들의 역사를 재조명했고, 재외 동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인생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  3주년 특집으로 하와이를 방문한 '한끼줍쇼'. 하외이에 숨겨진 역사를 돌아보는 이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울렸다.







하와이 제도는 여덟 개의 유인도와 부속도서로 이뤄졌다. 1898년 미국에 병합됐으며, 사탕수수 농장 개발 이후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등 다국적 노동자가 이민사회를 개척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oORyi6vKlk

하와이 독립운동 기록 97년 만에 최초 국내 공개 / KBS뉴스(News)




미국 하와이의 독립운동 거점인 '대한인국민회' 한국독립문화원, 무명애국지사 추모비

호놀룰루시 루크 애비뉴 2756번지에 있는 하와이 한국독립문화원 전경과 뒤뜰에 세워진 무명애국지사 추모비. 이 건물은 1947년부터 대한인 국민회관으로 사용됐었다.



이승만이 세운 한인기독교회

호놀룰루 릴리하 스트리트 139번지. 하와이와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인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18년 세운 한인기독교회이다.




대조선국민군단

1914년 6월 10일하와이 오아후(Oahu)섬 코올아우(Koolau)지방 카할루우(Kahaluu)의 아후이마누(Ahuimanu)농장에서 독립군사관을 양성할 목적으로 만든 군사교육단체. 국민군단은 박용만이 1909년 6월 네브라스카 헤스팅스에서 시작한 한인소년병학교의 군사운동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미주한인사회에 항일독립전쟁론을 구현하고자 만든 단체였다.



광화문의 외형을 모델로 설계된 한인기독교회

1937년 10월 3일 개천절에 맞춰 착공한 교회는 서울 광화문(光化門)의 외형을 모델로 설계됐다. 설계자는 이승만이 세운 한인중앙학원의 첫 졸업생이자 한국인 최초의 건축사인 김찬재였다.


하와이에는 해외에서 처음으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을 하며 삼일운동 경축 모임을 했던 한인기독여학원 자리인 카이무키의 알리이올라니 초등학교 등 하와이에는 24곳의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4/08/29/2014082900012.html


교과서는 말하지 않는 하와이 독립 운동


하와이 독립운동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잘 모르는 데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교육에 있다.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들은 항일 무장 독립투쟁,상하이 임시정부 그리고 광복군 등 만을 항일 독립운동 서술의 주축으로 삼고 있다


이승만은 1899년 1월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에서 『청일전기(淸日戰紀)』를 편역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또한 『신영한사전』을 편찬하였으며, 『제국신문』에 논설을 투고하였다. 『독립정신』은 그가 출옥한 이후인 1910년 LA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청일전기(淸日戰紀)』는 1917년 하와이에서 출간되었다.


1904년 8월 9일 특별 사면령을 받고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같은 해 11월 민영환(閔泳煥)과 한규설(韓圭卨)의 주선으로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배재대학부 영문학과 학력을 인정받아 1905년 2월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 대학(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 2학년 장학생으로 편입하였다. 


이승만은 워싱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전권 대사로서 한국의 독립 문제를 군축회의 의제로 상정시키고자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 하였고, 1922년 9월 하와이로 돌아갔다. 교육과 종교 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1924년 11월 호놀루루에서 조직된 대한인동지회 종신 총재에 취임하였다. 


1925년 3월 이승만은 자본금 7만 달러의 동지식산회사를 설립하고 하와이섬 올라(Olaa) 지방에 임야 3.86km²(약 117만 평)를 매입했다. 그는 곧바로 이 땅에 ‘동지촌(同志村)’이란 이름을 붙이고 개간사업을 시작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노령(老齡)의 한인 동포들을 모아 농사를 함께 지으며 살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최근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100년사》란 책을 펴낸 이덕희 미주한인재단 이사장은 하와이 독립운동사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그는 “이승만이 하와이에 25년 살면서 가장 주력한 사업은 결국 ‘교육’”이라며 “언젠가 나라를 다시 세우려면 지도자 양성이 가장 시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를 비롯해 만주와 상하이 등 여러 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숭고한 활동을 했지만, 이승만만큼 장기적인 비전을 보고 독립과 건국을 준비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최근 그를 향한 악의적 역사 왜곡은 정말 문제가 크다.한국에서 주류시각은 이승만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공과가 구분돼야 한다. 이승만의 ‘과’는 많은 이가 잘 알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업적과 행보는 지나치게 무시된 듯하다.


하와이 이민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1909년부터 1920년까지 하와이 국민회가 모은 독립자금은 300만 달러가 넘었다. 대부분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송금됐다. 동포들의 국권회복 운동에는 부녀들의 활약도 컸다.


1919년 3월15일 창립된 대한부인구제회도 ‘독립운동하다 다친 사람과 죽은 사람(가족)에게 구제비를 송금한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한 사람에게 송금한다’는 내용의 헌장을 정하고 중국 중경 한인 독립군단과 독립운동 중  부상당한 이들을 위해 1,500달러를 보냈는데 이는 지금돈으로 쳐도 7만~8만 달러 정도로 큰돈이었습니다. 조국 광복을 위해 먼 이국땅 하와이 사탕수수밭 중노동 속에서도 오로지 조국 광복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독립자금을 마련한 이민자들의 헌신적인 나라사랑 정신 역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과서는 말하지 않는 하와이 독립 운동


올해는 대한민국이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한지 벌써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나 현재 하와이에서 그나마 몇 남지 않은 독립 유적들은 심각할 정도로 방치돼 있다. 24곳의 하와이 독립운동 유적지 상황은 대체로 비슷했다. 대부분 평범한 주택가가 된 역사의 현장은 팻말이나 표지석 하나 없었다. 독립운동의 주요 자금원이었던 하와이는 지금까지 상하이나 만주 지역 등 중국의 독립유적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와이 독립운동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잘 모르는 데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교육에 있다.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들은 항일 무장 독립투쟁,상하이 임시정부 그리고 광복군 등 만을 항일 독립운동 서술의 주축으로 삼고 있다


이승만은 1899년 1월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에서 『청일전기(淸日戰紀)』를 편역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또한 『신영한사전』을 편찬하였으며, 『제국신문』에 논설을 투고하였다. 『독립정신』은 그가 출옥한 이후인 1910년 LA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청일전기(淸日戰紀)』는 1917년 하와이에서 출간되었다.


1904년 8월 9일 특별 사면령을 받고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같은 해 11월 민영환(閔泳煥)과 한규설(韓圭卨)의 주선으로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배재대학부 영문학과 학력을 인정받아 1905년 2월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 대학(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 2학년 장학생으로 편입하였다. 


이승만은 워싱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전권 대사로서 한국의 독립 문제를 군축회의 의제로 상정시키고자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 하였고, 1922년 9월 하와이로 돌아갔다. 교육과 종교 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1924년 11월 호놀루루에서 조직된 대한인동지회 종신 총재에 취임하였다. 


1925년 3월 이승만은 자본금 7만 달러의 동지식산회사를 설립하고 하와이섬 올라(Olaa) 지방에 임야 3.86km²(약 117만 평)를 매입했다. 그는 곧바로 이 땅에 ‘동지촌(同志村)’이란 이름을 붙이고 개간사업을 시작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노령(老齡)의 한인 동포들을 모아 농사를 함께 지으며 살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최근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100년사》란 책을 펴낸 이덕희 미주한인재단 이사장은 하와이 독립운동사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그는 “이승만이 하와이에 25년 살면서 가장 주력한 사업은 결국 ‘교육’”이라며 “언젠가 나라를 다시 세우려면 지도자 양성이 가장 시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를 비롯해 만주와 상하이 등 여러 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숭고한 활동을 했지만, 이승만만큼 장기적인 비전을 보고 독립과 건국을 준비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최근 그를 향한 악의적 역사 왜곡은 정말 문제가 크다.한국에서 주류시각은 이승만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공과가 구분돼야 한다. 이승만의 ‘과’는 많은 이가 잘 알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업적과 행보는 지나치게 무시된 듯하다.


하와이 이민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1909년부터 1920년까지 하와이 국민회가 모은 독립자금은 300만 달러가 넘었다. 대부분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송금됐다. 동포들의 국권회복 운동에는 부녀들의 활약도 컸다.


1919년 3월15일 창립된 대한부인구제회도 ‘독립운동하다 다친 사람과 죽은 사람(가족)에게 구제비를 송금한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한 사람에게 송금한다’는 내용의 헌장을 정하고 중국 중경 한인 독립군단과 독립운동 중  부상당한 이들을 위해 1,500달러를 보냈는데 이는 지금돈으로 쳐도 7만~8만 달러 정도로 큰돈이었습니다. 조국 광복을 위해 먼 이국땅 하와이 사탕수수밭 중노동 속에서도 오로지 조국 광복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독립자금을 마련한 이민자들의 헌신적인 나라사랑 정신 역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덧 3주년 '한끼줍쇼', 소리 없이 강한 이유

한끼줍쇼 첫방송: 2016년 10월 19일 첫방송

한끼줍쇼 1주년:  2017년 7월 일본 요코하마와 신주쿠

한끼줍쇼 2주년:  2018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

한끼줍쇼 3주년:  2019년 12월 미국 하와이


JTBC ‘한끼줍쇼’가 소리 없이 강하게 전진 중이다.


요즘의 예능 프로그램 생명력은 그리 길지 못하다. 모바일 플랫폼 확대로 웹 예능이 엄청난 인기를 끌며 기존 예능 자리를 넘보는가 하면, 최근에는 드라마 침체로 드라마 편성이 일시 폐지되고 빈자리를 예능이 채우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소수의 예능을 제외하고는 최대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스러진다.


이 같은 현실 속 JTBC ‘한끼줍쇼’는 2016년 10월 19일 시작해 3년 동안 매주 수요일 오후 11시대를 꽉 잡고 있어 눈길을 끈다. 3주년을 맞아 재외동포 특집을 꾸며 미국 하와이 편 방송 되었다. 


‘한끼줍쇼’는 평범한 가정에서 저녁 한 끼를 나누며 우리들의 모습을 엿본다는 취지를 품은 예능이다. 숟가락 들고 해외로 나가 한끼를 청하면서도 해외에 기록된 존재하는 한국 교민들과 독립운동 기록들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