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공간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ㅋㅌㅌ 2016. 10. 25. 03:23
유권자 한 표의 가치는 4660만원이라고 한다.
국회의원 임기인 4년치 국가 예산(2050조원)을 유권자 수로 나눈 금액이다. 

한국 지방자치 시작 이승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1950년 대 그것도 전쟁 중인 1952년에 지방자치가 처음으로 실시 된지 잘 모른다. 1948년 첫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지방자치를 규정 하였고, 이를 구체화한 『지방자치법』을 1949년 7월 4일 제정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에서도 명목상 지방자치와 비슷핫 제도를 시행하려 했지만 미군정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를 원했기에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 시대에 와서야 지방자치가 실시된다. 이승만은 1949년 12월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지방자치법을 개정, 국내적 불안정을 이유로 지방자치의 실시보류로 인한 지방행정의 공백에 대응하였다.

이승만은 지방자치제를 도입하여 한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성장시켰다. 이승만이 도입한 지방자치제는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폐지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단식투쟁을 불사하며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했다"고 호소했다. 거의 30년이나 지나서야 노태우 정권에서 다시 부활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대가는, 가장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그것도 안 되면 차악이라도 알아보고 뽑아야 하는 이유다.

 

 

 

 

 

 

 

 

 

- 네이버 영화 정보 제공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2016.10.26 (개봉예정)
95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전인환
(주연) 노무현, 김원명, 김하연, 백승영, 조덕희, 박영희, 장철영

 

이제 우리가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최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으며,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절이었고, 불신의 시절이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으며,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으며,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

 

노무현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속 변호사 카튼을 닮았다. 소설 속에서 대니를 대신 해 죽었던 카튼처럼, 우린 노무현을 잃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7년.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는가?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그의 진심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점을 시사하는지 조명한다.

 

김원명 작가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현상에 고민하던 중,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동지인 노무현과의 만남을 떠올린다. 어느덧 그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지 일곱 번째 오월을 맞아 원명은 무현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데… 영화는 영남과 호남에 위치한 두 도시를 배경으로 지역주의 해소와 권위주의 타파에 온 열정을 쏟았던 노무현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통해 그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영남과 호남의 구분 없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자취를 좇으며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털털한 노무현의 웃음에도 뼈가 있다. 아이에게 “아빠한테 2번이 좋대요 해라” 하고는 아이가 “뭐가 좋은데요?”라고 묻자 “어렵다”고 답한다. 땅값·집값이 오르고, 지하철이 들어오고, KTX역을 유치하고, 산업단지를 유치하고···. 지금의 선거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올 선심성 공약 대신 ‘어렵다’고 답하는 그가 원하는 이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영화는 16년 전 노무현 후보를 통해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무엇인지 깨달으라고 외치는 듯 하다.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정치인, 시민이 주인인 나라, 그런 나라를 위해 항상 깨어 있으라고 주문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6일 7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12일 만이다. 일반적으로 개봉영화들이 2주차부터는 관객이 감소하는 흐름이지만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지난주 연일 역주행을 하며 갈수록 관객이 느는 기현상을 보인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개봉 8주 만에 다큐멘터리 사상 이례적인 누적 관객 수 19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명) '워낭소리'(296만명), '울지마, 톤즈'(44만명)에 이어 역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4위를 수성한 기록이기에 앞으로의 흥행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완성하지 못한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과연 우리가 제대로 떠올리기나 하고 있을까요? 그가 꿈꾸었던 세상, 국민이 바뀌고 이 때문에 세상이 바뀌는 모습의 중심은 국민이었고, 바로 우리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 그가 꿈꾸었던 세상의 본질을 잊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의 죽음을 그리워하면서도 변화되지 못하고 사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며,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느껴보는 하루가 됐으면 합니다. 그가 남긴 미완의 꿈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너도 나도 노무현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걸 기억하고 있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 그가 꿈꾸었던 세상의 본질을 잊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 말이 왜 슬픈 울림을 자꾸 떠 올리게 하는건지...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요.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국민 여러분께 있습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남긴 영상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그렇게 국민들은 썩고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기 위해 희망의 노란 풍선을 들었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봉하마을에 세워져 있는 '작은 비석'에 쓰여진 글귀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돈이 없어 중학교를 한해 묵었다
부일 장학금에 합격해 부산상고에 입학했다

돈이 없었다.
학교 교실에서 잤다. 추위가 교실 바닥에 스며들었다
추위를 이기려고 이를 악물고 잤다
얼마나 이를 악물고 잤는지 이가 아파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 다음에 고시가 되면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돕고 살겠다고 생각했다.
판사가 되었다
편안한 시간이 다가왔다
차츰 가난은 지난날의 일로 잊혀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대학생을 자녀로 분 부모들이 찾아왔다
자식들이 군사정권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갔다
부산 영도다리 밑 등 곳곳을 찾아 다녔다.
마침내 그들이 잡혀 있는 곳을 찾았다.
그들을 발견했을때 고문으로 인해 손톱과 발톱이 새까맣게 타있고
사람을 무서워하는 짐승같은 처참한 상태로 발견됐다.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인가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나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가난하고 빽없고 힘없는 사람이 사람 대접 받고 사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완성하지 못한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과연 우리가 제대로 떠올리기나 하고 있을까요? 그가 꿈꾸었던 세상, 국민이 바뀌고 이 때문에 세상이 바뀌는 모습의 중심은 국민이었고, 바로 우리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 그가 꿈꾸었던 세상의 본질을 잊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의 죽음을 그리워하면서도 변화되지 못하고 사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며,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느껴보는 하루가 됐으면 합니다. 그가 남긴 미완의 꿈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완성하지 못한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과연 우리가 제대로 떠올리기나 하고 있을까요? 그가 꿈꾸었던 세상, 국민이 바뀌고 이 때문에 세상이 바뀌는 모습의 중심은 국민이었고, 바로 우리였습니다.

너도 나도 노무현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걸 기억하고 있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 그가 꿈꾸었던 세상의 본질을 잊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 말이 왜 슬픈 울림을 자꾸 떠 올리게 하는건지...

 

 

제1회 PGK AWARDS, 2016년
- 프로듀서만을 대상으로 한 국내 유일한 시상식
-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소속 프로듀서 218명 중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1월 10일까지의 한국영화 개봉작을 대상으로 동료 프로듀서의 투표

올해의 프로듀서상
'부산행'의 이동하 프로듀서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조은성 프로듀서

신인 프로듀서는 '대배우'의 조성환 프로듀서
특별상은 김진 프로듀서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치러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에서 지지율 2%로 시작해 대선후보의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을 되짚는 다큐멘터리다. 당시 경선 자료 화면과 문재인 대통령, 유시민 작가 등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 39명의 인터뷰를 교차시키면서 '인간 노무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28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3일째 누적관객 38만5천618명을 기록, 손익분기점인 관객 2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상영관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노무현 #독도   

타협할 수 없다!

https://www.youtube.com/shorts/_J5il7ClJxw

 

[노무현 명연설] 독도는 역사의 땅입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되었던 우리 땅입니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전쟁수행을 목적으로 편입하고 점령했던 땅입니다.

러일전쟁은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위해 일으킨 한반도 침략전쟁입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빌미로 우리 땅에 군대를 상륙시켜 한반도를 점령했습니다.

 

군대를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고 황실과 정부를 협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고

토지와 한국민을 마음대로 징발하고 군사시설을 마음대로 설치했습니다,

우리 국토 일부에서 일방적으로 군정을 실시하고 나중에는 재정권과 외교권마저 박탈하여

우리의 주권을 유린했습니다.

일본은 이런 와중에 독도를 자국영토로 편입하고 망루와 전선을 가설하여 전쟁에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점령상태를 계속하면서 국권을 박탈하고 식민지 지배권을 확보했습니다.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한 점령지의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사십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 투옥 강제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입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문제와 더불어 과거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 그리고 미래의 한일관계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일본의 의지를 가늠 하는 시금석입니다. 

일본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고 그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 한일간의 우호관계는 결코

바로설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이들 문제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한일간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일본의 어떤

수사도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경제적 이해관계도 그리고 문화적인 교류도 이 벽을 녹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한일간에는 아직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가 획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 주장하고 그 위에서 독도 기점까지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해 해저지명 문제는 배타적 경제 수역문제와 연관돼 있습니다.

배타적 수역의 경계가 합의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우리 해역의 해저 지명을 부당하게

선점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따라서 일본이 동해 해저 지명문제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리고 배타적 경제

수역에 관한 문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되었고 결국 독도 문제도 더 이상 조용한

대응으로 관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우려하는 견해가 없지는 않으나 우리에게 독도는 단순히

조그만 섬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확립을
상징하는 문제입니다.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대처해나가야 할 일입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제 정부는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겠습니다.

독도문제를 일본의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참배문제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수호의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어 나가겠습니다.

물리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세계여론과 일본국민에게 일본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끊임없이 고발해 나갈 것입니다.

일본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전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그밖에도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할 것입니다.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유권자 한 표의 가치는 4660만원이라고 한다.
국회의원 임기인 4년치 국가 예산(2050조원)을 유권자 수로 나눈 금액이다. 

한국 지방자치 시작 이승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1950년 대 그것도 전쟁 중인 1952년에 지방자치가 처음으로 실시 된지 잘 모른다. 1948년 첫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지방자치를 규정 하였고, 이를 구체화한 『지방자치법』을 1949년 7월 4일 제정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에서도 명목상 지방자치와 비슷핫 제도를 시행하려 했지만 미군정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를 원했기에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 시대에 와서야 지방자치가 실시된다. 이승만은 1949년 12월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지방자치법을 개정, 국내적 불안정을 이유로 지방자치의 실시보류로 인한 지방행정의 공백에 대응하였다.

이승만은 지방자치제를 도입하여 한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성장시켰다. 이승만이 도입한 지방자치제는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폐지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단식투쟁을 불사하며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했다"고 호소했다. 거의 30년이나 지나서야 노태우 정권에서 다시 부활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대가는, 가장 저질스런 인간에게 지배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그것도 안 되면 차악이라도 알아보고 뽑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