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82년 펜실베이니아 주 프랭클린앤드마샬대학을 거쳐 그해 뉴저지 주 드류 신학교를 졸업했다.
1884년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의 한국선교 결정에 따라 1885년 4월 2일 한국에 입국하여 한국선교회 및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1887년 한국선교부 감리사로 있으면서 학교와 병원 등에 복음전도의 여러 사업을 맡았다. 같은 해 10월 29일 서울에 벧엘 예배당(지금의 정동제일교회)을 설립했으며 1888년에는 H. G. 언더우드, G. H. 존스 등과 함께 지방을 순회하면서 전도활동을 벌였다. 1890년 한국성교서회(韓國聖敎書會)를 창설하여 1892년 회장직을 맡는 등 성서번역사업에 큰 기여를 했다.
1895년에 월간지 〈한국휘보 The Korean Repository〉의 편집일을 맡았으며, 1897년에는 한국말로 된 최초의 종교신문인 〈죠션 크리스토인회〉를 창간하여 선교사업 외에 민족계몽운동에도 조력했다. 1902년(광무 6)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그가 탄 배와 일본 상선이 충돌하여 익사했다. 큰아들은 배재학교 교장을, 큰딸은 이화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아버지 H. G.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설립, 아들은 배재대 학장, 딸은 이화여대 학장.
아들 헨리 도지 아펜젤러 는 미국에서 공부한 뒤 아버지를 이어 배재학당에 교장으로 취임해 학생들의 교육에 헌신했고, 딸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 역시 이화학당(현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이화여자대학교
1886년 5월 31일 – 전신학교(가명). 메리 스크랜튼
1887년: 명성황후‘ 이화학당’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첫 교장 배재학당 아펜젤러 딸, 앨리스 아펜젤러.
첫 교장은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가 한국에서 낳은 딸, 앨리스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다. 그는 이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백인 아기다.
이화학당은 미국 북 감리교회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턴(1832~1909년)이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성 교육기관이다. 딸 Alice R. 아펜젤러는 1939년 김활란 부교장에게 교장직을 넘겨주고 1940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김활란은 1936년 말부터 글과 강연을 통해 일제 학도병과 징용, 위안부 참여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 친일인사 명단에 두 번 오른 인물이다.이화여전이 대학으로 승격된 1946년 김활란 교수가 초대 총장에 취임한 것을 두고는 친일 논란이 일었다.
[출처]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4a2656a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4a2657a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헨리 게하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의 순교 12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2일 배재대학교 아펜젤러기념관에서 추모예배를 시작으로 아펜젤러의 발자취를 따라 서천 아펜젤러순직기념관, 군산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를 방문하는 등 다양하게 진행됐다.
배재대, 아펜젤러 순교 120주기 추모제
www.sisa-news.com/news/article.html?no=201254
배재학당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 (서울 정동)
배재대학부 역사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설립자 아펜젤러 H. G. Appenzeller)
1886. 04 .01 초대학당장 아펜젤러 취임
1886. 06. 08 고종황제로부터 '배재학당' 현판 하사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1896. 04. 07 배재학당내에서 「독립신문」발간(서재필)
1896. 11. 30 배재협성회(학생회) 조직(지도 서재필)
1898. 아펜젤러 '서울대학교(Seoul University)' 설립 계획 - 법과 400명, 문리과대학 1180명, 사범대학 1320명, 공과대학 1320명, 의과대학 400명.
1925. 09. 17 조선총독부에 의해 배재학당 교명 폐지
1937. 03. 03 배재중학교(5년)로 개칭
1951. 08. 2 1 배재중학교(3년) 및 배재고등학교(3년)로 개편
1955. 04. 26 대전보육학원 설립 (설립자 허길래, Clara Howard)
1959. 11. 배재대학교 기공식 (의대 포함.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 4.19로 잠정중단
1992. 03. 13 배재대학교 (Pai Chai University)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설립자 아펜젤러 H. G. Appenzeller)
- 배재학당(培材學堂)은 1885년 8월3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서울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이며,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의 전신이다.
- PAICHAI ACADEMY 번역이 배재학당 이고 대학이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라 학당이라고 한 것이다.
1886. 06. 08 고종 황제는 배양영재의 줄임말인 배재학당이라는 교명과 액(額)을 내리었다.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는 예비과정(preparatory dept.), 교양과정(academic dept.), 대학과정(college dept.)으로 나뉘어진 각 과정마다 교과과정에도 반영되어 기본 교과목으로 영어, 한문, 언문, 문법 등이 개설되었다. 1895년 영문과 106명, 국한문과 60명, 신학과 6명의 입학으로 정규 대학과정이 시작되었다.
- .이승만이 조지워싱턴대를 3학년에 편입한 것은 ‘배재대학’ 2년 학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하버드대 석사 1년, 프린스턴대 박사 2년 과정을 일사천리로 마쳤다.
-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에 대학부를 설치하고, 실제로 Paichai college로 표시하였다.
1925. 09. 17 조선총독부에 의해 배재학당 교명 폐지
1951. 08. 21 배재중학교(3년) 및 배재고등학교(3년)로 개편
1959. 11. 배재대학교 기공식 (의대 포함.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 4.19로 잠정중단
1992. 03. 13 배재대학교 (Pai Chai University), 대전
배재대의 전신이 배재학당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숭실대학교가 구한말의 숭실학교를 계승했다고 하듯이... 국립 성균관대는 일제강점기 때 성균관은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고 1943년에는 폐교당했다. 국립 성균관대는 일제강점기 때 성균관은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고 1943년에는 폐교당했다. 사립 성균관대는 김창숙이 주도하에 1946년 기존 성균관 바로 옆자리에 성균관 주변 땅을 사서 개교. 성균관대 대학 역사는 근본적 대학 과정은 1895년 경학과 설치한 시대로 봐야 한다. 고로 성균관1895 이나 배재대1885 나 도긴개긴..
시간의 끝은 그 한계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연속해서 흐르며 한계가 없는 시간은 멈출 수 없는 무한한 그 무언가 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한계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시간과 같은 연속성을 지닐 수도 없으며 일정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소비는 누구도 선택 할 수 없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강제적 시간 소비를 강요받고 있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거나 멈출 수 없으며 내일의 시간을 부족한 오늘의 시간을 늘리기 위기 위해 끌어다 사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의 연속성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시간의 한계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공간이 시간을 기억한다
공간은 시간을 기억하며 시간은 공간을 기억한다.
1885년 08월 03일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배재학당(培材學堂)은 1885년 8월3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서울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이며,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의 전신이다.1886년 6월 8일 고종 황제는 배양영재의 줄임말인 배재학당이라는 교명과 액(額)을 내리었다.
1895년 09월 01일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1886년 5월 31일 – 전신학교(가명). 메리 스크랜튼
1887년: 명성황후‘ 이화학당’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첫 교장 배재학당 아펜젤러 딸, 앨리스 아펜젤러.
첫 교장은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가 한국에서 낳은 딸, 앨리스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다. 그는 이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백인 아기다.
1887년 9월 배재학당 신학 교육 실시 (감리교신학대)
1912. 06 배재학당내 기독교연합대학 설립 (연희전문 전신)
1916. 04 기독교대학을 Y. M. C. A.로 이전
배재대의 전신이 배재학당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숭실대학교가 구한말의 숭실학교를 계승했다고 하듯이... 국립 성균관대는 일제강점기 때 성균관은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고 1943년에는 폐교당했다. 국립 성균관대는 일제강점기 때 성균관은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고 1943년에는 폐교당했다. 사립 성균관대는 김창숙이 주도하에 1946년 기존 성균관 바로 옆자리에 성균관 주변 땅을 사서 개교. 성균관대 대학 역사는 근본적 대학 과정은 1895년 경학과 설치한 시대로 봐야 한다. 고로 성균관1895 이나 배재대1885 나 도긴개긴..
시간의 끝은 그 한계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연속해서 흐르며 한계가 없는 시간은 멈출 수 없는 무한한 그 무언가 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한계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시간과 같은 연속성을 지닐 수도 없으며 일정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소비는 누구도 선택 할 수 없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강제적 시간 소비를 강요받고 있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거나 멈출 수 없으며 내일의 시간을 부족한 오늘의 시간을 늘리기 위기 위해 끌어다 사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의 연속성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시간의 한계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공간이 시간을 기억한다
공간은 시간을 기억하며 시간은 공간을 기억한다.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설립자 아펜젤러 H. G. Appenzeller)
1886. 04 .01 초대학당장 아펜젤러 취임
1886. 06. 08 고종황제로부터 '배재학당' 현판 하사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1896. 04. 07 배재학당내에서 「독립신문」발간(서재필)
1896. 11. 30 배재협성회(학생회) 조직(지도 서재필)
1898. 아펜젤러 '서울대학교(Seoul University)' 설립 계획 - 법과 400명, 문리과대학 1180명, 사범대학 1320명, 공과대학 1320명, 의과대학 400명.
1925. 09. 17 조선총독부에 의해 배재학당 교명 폐지
1937. 03. 03 배재중학교(5년)로 개칭
1951. 08. 21 배재중학교(3년) 및 배재고등학교(3년)로 개편
1955. 04. 26 대전보육학원 설립 (설립자 허길래, Clara Howard)
1959. 11. 배재대학교 기공식 (의대 포함.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 4.19로 잠정중단
1992. 03. 13 배재대학교 (Pai Chai University)
배재대학부 역사
배재학당을 설립한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는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최초를 만들어낸 선교사 중 한 명이다. 아펜젤러는 국내 최초의 서양식 사립학교이자 감리회 종립학교인 배재학당을 설립하였다. 배재학당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교복을 입었다. 이 교복을 입고 처음으로 수학여행도 갔다. 또 학칙이 처음 생겨난 곳도 배재학당이다. 고종은 학교 이름을 培材學堂(유능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 이라 짖고 현판을 하사하였다.
배재학당의 교사인 한문학자 조성규 선생님이 아펜젤러 목사님과 의논하고, 성경 말씀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씀을 한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이 "欲爲大者 當爲人役(욕위대자당위인역)" 이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에 대학부를 설치하고, 실제로 Paichai college로 표시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배재학당(그당시는 배재중학교/배재고등보통학교)이 항일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배재중학교로 강등되었다. 다시 말해 대학부는 맥이 끊겼다. 이때의 배재중학교가 지금의 배재중/고등학교로 바뀌었지만, 대학부는 그저 부활만을 바라야 했다.
광복 이후에 배재학당 동문들이 배재대학교를 서울에 세우려고 하였지만 순탄치 못하였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대학 부지까지 마련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대학설립이 계속 늦춰졌다. 1950년대 후반에 드디어 기공식을 했건만, 자랑스런 동문 이승만이 하야해야 했던 4.19혁명 때문에 또 무산되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즈음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서울에 대학을 세울 수 없었다.
배재대학교는 배재학당 대학부와 대전초급보육대학의 역사를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대학교별 옛날 이름
연세대학교=>배재학당 기독교연합대학(연희전문대학)+제중원(세브란스의과대학) 재단합병
고려대학교=>보성전문학교
한양대학교=>1939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성균관대학교=>성균관
국립 성균관대는 일제강점기 때 성균관은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고 1943년에는 폐교당했다. 사립 성균관대는 김창숙이 주도하에 1946년 기존 성균관 바로 옆자리에 성균관 주변 땅을 사서 개교. 1946년 9월 25일 문교부에 의해 성균관대학이 정식으로 인가. 도투락 만두 만드는 봉명그룹인가로 넘어갔다가 다시 1997년인가 98년인가 삼성그룹으로 또 넘어감.
중앙대학교=>중앙유치원
이화여대=>이화여전
경희대학교=>신흥무관학교
시립대학교=>서울 농업대학
한국외대=>동양대학
건국대학교=>조선정치학관
동국대학교=>불교사범학교, 혜화전문학교
홍익대학교=>수도공과대학
세종대학교=>경성인문중등학원
서경대학교=>국제대학
숭실대학교=>숭전대
숭전대...북한에 본적지를 두고 있는 미션스쿨이냐. 아니면 과거 대전대랑 숭실대랑 재단 합병해 숭전대로 했다가 재단 합병한거 쫑나서 대전대를 토사구팽해 한남대로 대학 이름 바뀌게한 숭전대를 말하는거냐.
배재대학교 => 배재학당, 배재대학부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시간의 끝은 그 한계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연속해서 흐르며 한계가 없는 시간은 멈출 수 없는 무한한 그 무언가 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한계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시간과 같은 연속성을 지닐 수도 없으며 일정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소비는 누구도 선택 할 수 없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강제적 시간 소비를 강요받고 있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거나 멈출 수 없으며 내일의 시간을 부족한 오늘의 시간을 늘리기 위기 위해 끌어다 사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의 연속성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시간의 한계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공간이 시간을 기억한다
공간은 시간을 기억하며 시간은 공간을 기억한다.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설립자 아펜젤러 H. G. Appenzeller)
1886. 04 .01 초대학당장 아펜젤러 취임
1886. 06. 08 고종황제로부터 '배재학당' 현판 하사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1896. 04. 07 배재학당내에서 「독립신문」발간(서재필)
1896. 11. 30 배재협성회(학생회) 조직(지도 서재필)
1898. 아펜젤러 '서울대학교(Seoul University)' 설립 계획
- 법과 400명, 문리과대학 1180명, 사범대학 1320명, 공과대학 1320명, 의과대학 400명.
1925. 09. 17 조선총독부에 의해 배재학당 교명 폐지
1937. 03. 03 배재중학교(5년)로 개칭
1951. 08. 21 배재중학교(3년) 및 배재고등학교(3년)로 개편
1955. 04. 26 대전보육학원 설립 (설립자 허길래, Clara Howard)
1959. 11. 배재대학교 기공식 (의대 포함.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 4.19로 잠정중단
1992. 03. 13 배재대학교 (Pai Chai University)
... College에서 University 되는데 97년의 시간이 필요
아버지는 배재학당 설립, 아들은 배재대 학장, 딸은 이화여대 학장
[팩트체크] 배재학당(Pai Chai Academy) → 배재대학부(Pai Chai College) → 배재고등학당 → 배재중학교 → 배재고등학교 → 배재대학교(Pai Chai University)
1885년 8월 3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배재학당은 한국 최조의 근대신 중등교육기관으로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의 전신이다.
1885년 헨리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을 모체로 하여 1895년 배재대학부(Pai Chai College)를 설립하였다. 같은 해 영문과 106명, 국한문과 60명, 신학과 6명의 입학으로 정규 대학과정이 시작되었다.
1909년 배재고등학당으로 인가되었다. 이후 일제 탄압으로 YMCA 안에서 잠시 명맥만 유지하다가 1925년 일제에 의하여 대학과정은 폐지되었고 1937년 배재중학교(6년)로 개칭하였다. 해방 이후에 1951년 배재중학교(3년) 및 배재고등학교(3년)로 개편하였고, 1958년 학교법인 배재학당의 인가를 받았다.
아버지 H. G.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설립, 아들은 배재대 학장, 딸은 이화여대 학장. 딸 Alice R. 아버지 H. G.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설립, 아들은 배재대 학장, 딸은 이화여대 학장. 딸 Alice R. 아펜젤러는 1939년 김활란 부교장에게 교장직을 넘겨주고 1940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김활란은 1936년 말부터 글과 강연을 통해 일제 학도병과 징용, 위안부 참여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친일인사 명단에 두 번 오른 인물이다.
1885년 8월 3일,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고종황제는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1885년 헨리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을 모체로 하여 1895년 배재대학부(Pai Chai College)를 설립하였다. 같은 해 영문과 106명, 국한문과 60명, 신학과 6명의 입학으로 정규 대학과정이 시작되었다.
... 대학부 그리고 대학교. 어차피 돌고돌아 배재대학교.
대학교별 옛날 이름
서울대학교=>경성제국대학교
연세대학교=>연희전문학교
고려대학교=>보성전문학교
한양대학교=>동아공과대학,건국기술학교
성균관대학교=>성균관
중앙대학교=>중앙유치원
이화여대=>이화여전
경희대학교=>신흥무관학교
시립대학교=>서울 농업대학
한국외대=>동양대학
건국대학교=>조선정치학관
동국대학교=>불교사범학교, 혜화전문학교
홍익대학교=>수도공과대학
세종대학교=>경성인문중등학원
서경대학교=>국제대학
배재대학교 ㅁ=>배재학당, 배재대학부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시간의 끝은 그 한계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연속해서 흐르며 한계가 없는 시간은 멈출 수 없는 무한한 그 무언가 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한계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시간과 같은 연속성을 지닐 수도 없으며 일정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소비는 누구도 선택 할 수 없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강제적 시간 소비를 강요받고 있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거나 멈출 수 없으며 내일의 시간을 부족한 오늘의 시간을 늘리기 위기 위해 끌어다 사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의 연속성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시간의 한계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공간이 시간을 기억한다
공간은 시간을 기억하며 시간은 공간을 기억한다.
역사속의 오늘 - 8월 3일
배재대학교 135주년 개교기념일
1885년 8월 3일 설립된 배재학당(培材學堂)은 미국의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가 서울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이다.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의 전신이기도 하다.
고종 22년(1885년) 7월 아펜젤러 목사가 서울에 들어와, 1개월 먼저 와 있던 스크랜턴 의사의 집 한 채를 빌려 두 칸짜리 방의 벽을 헐고 조그마한 교실을 만들었다. 같은해 8월 3일 이겸라(李謙羅)·고영필(高永弼)이라는 두 학생을 얻어 수업을 시작함으로써, 한국 근대학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1886년 6월 8일 고종은 배양영재의 줄임말인 배재학당이라는 교명과 액(額)을 내렸다.
아펜젤러 목사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의 선교학교는 1886년 6월 8일에 시작되어 7월 2일까지 수업이 계속되었는데 학생은 6명이었다. 오래지 않아 한 학생은 시골에 일이 있다고 떠나버리고, 또 한 명은 6월이 외국어 배우기에 부적당한 달이라는 이유로 떠나버리고, 또 다른 가족의 상사(喪事)가 있다고 오지 않았다. 10월 6일인 지금 재학생 20명이요, 실제 출석하고 있는 학생수는 18명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배재학당의 설립목적에 대해선 "우리는 통역관(通譯官)을 양성하거나 학교의 일군을 양성하려는 것이 아니요, 자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내보내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학당훈(學堂訓)은 '큰 인물이 되려는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알아야 된다(欲爲大者 當爲人役)'고 해 기독교적 교훈(마태복음 20장 26-28절)으로 봉사적 인물을 양성하려 했다.
교과목으로는 한문·영어·천문·지리·생리·수학·수공·성경 등이 있었고, 그 외의 과외활동으로 연설회·토론회와 같은 의견발표의 훈련을 시켰으며, 정구·야구·축구 등 운동을 과목도 있었다.
1887년 9월부터는 한국학생들에게 신학교육을 실시하였고, 1893년부터는 정규적인 신학교육이 함께 이뤄졌다.
1893년 8월에 열린 미국 감리회 한국 선교회 19차 연회에서는 아펜젤러를 '배재대학 학장 겸 신학부 부장'으로 임명했으며, 배재학당은 지금의 배재중•고등학교, 배재대학교의 , 신학부는 지금의 감리교신학대학교의 모체가 된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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