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공간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그리고 씨스붐바

ㅋㅌㅌ 2019. 1. 6. 16:57

 

 

 

 

 

 

고종이 하사한 배재학당 현판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培材學堂) 창립 (설립자 아펜젤러 H. G. Appenzeller) 

1886. 04 .01 초대학당장 아펜젤러 취임

1886. 06. 08 고종황제로부터 '배재학당' 현판 하사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1896. 04. 07     배재학당내에서 「독립신문」발간(서재필)

1896. 11. 30     배재협성회(학생회) 조직(지도 서재필)

1898.             아펜젤러 '서울대학교(Seoul University)' 설립 계획 - 법과 400명, 문리과대학 1180명, 사범대학 1320명, 공과대학 1320명, 의과대학 400명.

1925. 09. 17 조선총독부에 의해 배재학당 교명 폐지

1937. 03. 03 배재중학교(5년)로 개칭  

1951. 08. 21 배재중학교(3년) 및 배재고등학교(3년)로 개편

1955. 04. 26 대전보육학원 설립 (설립자 허길래, Clara Howard)

1959. 11.        배재대학교 기공식 (의대 포함.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 4.19로 잠정중단

1992. 03. 13 배재대학교 (Pai Chai University)

 

배재대학부 역사

 

배재학당을 설립한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는 대한민국 근대사에서 최초를 만들어낸 선교사 중 한 명이다. 아펜젤러는 국내 최초의 서양식 사립학교이자 감리회 종립학교인 배재학당을 설립하였다. 배재학당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교복을 입었다. 이 교복을 입고 처음으로 수학여행도 갔다. 또 학칙이 처음 생겨난 곳도 배재학당이다. 고종은 학교 이름을 培材學堂(유능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 이라 짖고 현판을 하사하였다.

 

배재학당의 교사인 한문학자 조성규 선생님이 아펜젤러 목사님과 의논하고, 성경 말씀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는 말씀을 한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이 "欲爲大者 當爲人役(욕위대자당위인역)" 이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에 대학부를 설치하고, 실제로 Paichai college로 표시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배재학당(그당시는 배재중학교/배재고등보통학교)이 항일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배재중학교로 강등되었다. 다시 말해 대학부는 맥이 끊겼다. 이때의 배재중학교가 지금의 배재중/고등학교로 바뀌었지만, 대학부는 그저 부활만을 바라야 했다.

 

광복 이후에 배재학당 동문들이 배재대학교를 서울에 세우려고 하였지만 순탄치 못하였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대학 부지까지 마련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대학설립이 계속 늦춰졌다. 1950년대 후반에 드디어 기공식을 했건만, 자랑스런 동문 이승만이 하야해야 했던 4.19혁명 때문에 또 무산되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즈음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에 서울에 대학을 세울 수 없었다.

 

배재대학교는 배재학당 대학부와 대전초급보육대학의 역사를 모두 가지고 있는 셈이다.

 

 

대학교별 옛날 이름

 
서울대 1924 경성제국대학
카이스트 1971 한국과학원
포항공대 1986 포항공과대학
 
연세대 1885 광혜원(세브란스)
(1915 연희전문학교 + 1947 세브란스)
고려대 1905 보성전문학교

서강대 1960 서강대학
성균관대 1946 성균관대학

국립 성균관대는 일제강점기 때 성균관은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고 1943년에는 폐교당했다. 국립 성균관대는 일제강점기 때 성균관은 경학원, 명륜전문학교 등으로 격하되었고 1943년에는 폐교당했다. 사립 성균관대는 김창숙이 주도하에 1946년 기존 성균관 바로 옆자리에 성균관 주변 땅을 사서 개교. 1946년 9월 25일 문교부에 의해 성균관대학이 정식으로 인가.

 

한양대 1939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중앙대 1918 중앙유치원

농협대 1962 농협대학
경희대 1911 신흥강습소
외대 1954 한국외국어대학
시립대 1918 경성공립농업학교

건국대 1931 사회영중앙실비진료원
동국대 1906 명진학교
홍익대 1946 홍문대학관

한동대 1995 한동대학교
아주대 1973 아주공업초급대학
인하대 1954 인하공과대학
항공대 1952 교통고등학교

국민대 1946 국민대학관
숭실대 1897 평양 숭실학당
광운대 1934 조선무선강습소
명지대 1946 서울양재학원

세종대 1940 경성인문중등학원
가톨릭대 1855 성요셉신학교
상명대 1937 상명여자고등기예학원
단국대 1947 단국대학

한성대 1972 한성여자대학
서경대 1947 한국대학
삼육대 1906 의명학교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서울대학교=>경성제국대학교 

연세대학교=>배재학당 기독교연합대학(연희전문대학)+제중원(세브란스의과대학) 재단합병
고려대학교=>보성전문학교 

한양대학교=>1939 동아공과학원>건국기술학교>한양야간공대>한양대
성균관대학교=>성균관 
중앙대학교=>중앙유치원 
이화여대=>이화여전
경희대학교=>신흥무관학교 시립대학교=>서울 농업대학

 

한국외대=>동양대학
건국대학교=>조선정치학관
동국대학교=>불교사범학교, 혜화전문학교

홍익대학교=>수도공과대학

세종대학교=>경성인문중등학원

서경대학교=>국제대학

숭실대학교=>숭전대


배재대학교 => 배재학당, 배재대학부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시간의 끝은 그 한계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연속해서 흐르며 한계가 없는 시간은 멈출 수 없는 무한한 그 무언가 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한계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시간과 같은 연속성을 지닐 수도 없으며 일정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소비는 누구도 선택 할 수 없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강제적 시간 소비를 강요받고 있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거나 멈출 수 없으며 내일의 시간을 부족한 오늘의 시간을 늘리기 위기 위해 끌어다 사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의 연속성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시간의 한계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공간이 시간을 기억한다 

 

공간은 시간을 기억하며 시간은 공간을 기억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 무궁하도록~~

라라라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라라라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https://www.youtube.com/watch?v=rjooPrDTwTk&t=9s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

... 내가 존경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먼저 존경해야 한다. 그 시작은 대화이며 화법을 기초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가는 곳마다 불통을 걱정하고 있다. 소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배재대학교 아펜젤러 기념관 앞에 서 있는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배재학당(배재중·배재고·배재대학교) 교훈이다. 欲爲大者當爲人役(욕위대자당위인역). 뜻을 그대로 풀면 “크게 되려는 사람은 마땅히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배재학당에서는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고 말한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의 학훈인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를 만들었다. (마태복음 20:26∼28)라는 예수님의 교훈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의 아들인 헨리 다지 아펜젤러는 배재교가를 작사작곡했다. 모교 프린스턴 대학교의 응원가를 개사해 만들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아펜젤러가 직접 한글로 적은 것은 아니고, 이는 훗날 배재학당의 교사 중 한 명이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일제 감정기 일제 감정기 당시 배재학당 출신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총독부에서 배재학당을 강력히 규제하며 대학설립을 방해했다고 한다. 다른 사립학교인 연희전문학교 (현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 전문학교(전 이화학당, 현 이화여자대학교)는 총장인 윤치호와 김활란이 친일 행위로 인해 일제에 의한 학교규제가 비교적 느슨했던 편이었다. 고려대,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는 전국 일간지에 내선일체 찬양글, 학도병 권유, 징병,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기고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가 인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록되어 건국훈장이 박탈 되었다. 서울대 (경성제국대학) 출신과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던 친일인물 12명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배재학당은 민족을 섬기는 공간이기도 했다. 1889년에는 한글 활자를 주조해 성경을 인쇄했으며, 1896년에는 <독립신문>을, 1897년에는 <조선 그리스도인의 회보>를 출판했다. 1898년에는 학생 기관지인 <협성회보>와 일간신문인 <매일신문>을 각각 발행했다. 1892년에는 목각으로 <천로역정>을 발행하기도 했다.

1920년 3월 2일, 3·1운동 1주년을 맞아 700여 명의 학생은 일제히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배재학당을 ‘만세학교’라 불렀다. 이처럼 배재학당은 교육구국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다했고, 일제강점기 36년 동안에는 민족의식과 정의감을 굽히지 않고 용감히 항쟁했다.

배재학당 교가가 응원가에 가까운 이유가 있다. 배재학당은 개교 때부터 전인교육에 힘을 쏟았다. 당시에는 전인교육이라는 말도 없었겠지만, 아펜젤러 선교사는 신앙교육과 함께 지식교육, 그리고 체육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그래서 1900년에는 정구반, 1902년엔 축구반, 1911년엔 야구반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육상반(1920) 빙상반(1922) 씨름반(1923) 농구반(1925) 유도반(1925) 역도반(130) 등 우리나라 근대 체육이 배재학당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스붐바’라는 용어에 대한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시스붐바(sis-boom-bah)’는 영어 단어로 응원할 때 외치는 일종의 구호다.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이겨라’라는 뜻이다. 시스붐바는 미국 남북전쟁 때 북부군의 구호였으며, 이후 미국 대학들의 응원구호로 번졌다. 뉴저지주의 드류대학 신학부를 다닌 아펜젤러 선교사가 이 구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편 연세대 응원가에도 시스붐바가 등장한다. 연세대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가 뉴욕대학교, 뉴저지주 뉴브런즈윅신학교를 나온 것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카라카칭(아라칭) 아카라카쵸(아라쵸) 아카라카 칭칭 쵸쵸쵸 (아라칭칭쵸쵸쵸) 랄랄라 시스붐바 연세선수 라플라 헤이 연세 야. 배재학당의 교가나 연세대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응원가에 ‘씨스뿜바’라는 말이 나온다.

조선말 날로 기울어만 가는 나라의 운명에 혼란스럽고 절망뿐인 암울했던 시절 일부러 밝고 갱쾌하며 힘찬 배재학당 교가를 통해 학생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 줬다. 이겨레의 동량을 키우는 등불이 되고자 태어난 배재학당과 씨스뿜바는 미래를 약속한 큰 사건임에 틀림없었으며 그 이듬해 1886년에 고종황제께서 친히“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박사가 New York 대학교를 나오고 뉴저지주에 있는 New Brunswik 신학교를 다녔다는 점과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 선교사도 펜실베니아주의 Franklin 대학, Marshall 대학 및 뉴저지주의 Drew 대학 신학부를 다닌 점으로 보아 이들은 멋있게 Sisboombah가 불리워지는 응원이라는 멋드러진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편 조선에서 태어난 딸 앨리스 아펜젤러는 이화학당 제6대 당장이 되었다. 앨리스는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하고, 이화여전을 정동서 신촌으로 옮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는 정동에 그대로 남았으며, 1943년 이화여고보와 이화여전의 재단이 분리되었다. 1992년에는 정동에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도 세워졌다. 오늘날 이화여고와 이화외고는 학교법인 이화학원에서, 이화여대와 이화여대 부속학교들은 학교법인 이화학당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최초의 한국인 교장이 된 게 김활란이다. 헨리 다지 아펜젤러가 프린스턴 대학의 학생이었던 것 처럼 언더우드 역시 프린스턴 출신이기에 연희전문학교의 교표도 프린스턴 대학과 흡사하다.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 연세대의 교표가 되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교휸은 사회, 단체, 기업등에서 인간 관계에서 안정성(stability)과 유연성(flexibility)를 확보할수 있는 서번트 리더십에 필요한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내가 존경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먼저 존경해야 한다. 그 시작은 대화이며 화법을 기초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가는 곳마다 불통을 걱정하고 있다. 소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로 구성원들을 후원하고 지지함으로써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지도력.

부하에게 목표를 공유하고 부하들의 성장을 도모하면서. 리더와 부하간의 신뢰를 형성시켜 궁극적으로 조직 성과를 달성하게 하는 리더십입니다.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가 부하를 섬기는 자세로 그들의 성장 및 발전을 돕고 조직 목표 달성에 부하 스스로 기여하도록 만듭니다.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주는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배재학당의 교훈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다. 그 뜻이 깊다.

영국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이튼칼리지는 영국의 정체성을 표상한다. 윈저성을 바라보는 위치 자체가 왕실을 반영한다. 지금까지 총 21명의 수상을 배출했으며,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졸업생도 많다. 넬슨이 “트라팔가 승리는 이튼의 운동장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했는데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가 함께’ 가야한다는 것을 되살린다. 세계 1차대전 때 이튼 전교생의 3분의 1이 전사했는데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는 이를 잘 그리고 있다.

故 이병형 장군이 전쟁기념관을 지을 때 6·25전쟁에서 전사한 외국 참전용사들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 넣은 것은 여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하며 깊은 인상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이 명판을 접하는 것이라고 한다.

명문 학교를 되살리는 것은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의식이 투철할 때에야 비로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배재의 교훈은 모두들, 특히 정치인이 두고두고 되씹어보아야 할 교훈이다.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 내가 존경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먼저 존경해야 한다. 그 시작은 대화이며 화법을 기초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가는 곳마다 불통을 걱정하고 있다. 소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배재대학교 교가의 첫머리에 나오는 "우리" 라는 어휘입니다. 3행에도 반복되는 그것은 우리에게 강한 공동체의식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흐름은 또한 공간적 유대감에서 연속적인 시간의 의미인 부사 "다시" 와 맞닿습니다.

1886년에 고종황제께서 친히“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배재는 배양영재(培養英材)의 줄임말로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란 뜻을 담고 있으며, 설립 당시부터 대학(PAI CHAI COLLEGE)으로 출발했다. 설립 초기부터 개방화된 전통을 이어받아 배재대는 40개 나라의 243개 대학 및 기관과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하게 교류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현재 74개 나라에서 유학 온 726명의 외국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시간의 끝은 그 한계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연속해서 흐르며 한계가 없는 시간은 멈출 수 없는 무한한 그 무언가 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한계성을 지니지는 않지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연속성 안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은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시간과 같은 연속성을 지닐 수도 없으며 일정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소비는 누구도 선택 할 수 없는 것이다.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강제적 시간 소비를 강요받고 있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거나 멈출 수 없으며 내일의 시간을 부족한 오늘의 시간을 늘리기 위기 위해 끌어다 사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의 연속성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시간의 한계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재대학부→배재고등학당→배재중학교→배재고등학교→배재대학교
.배재대학부(Pai Chai College) → 배재고등학당 → 배재중학교 → 배재고등학교 → 배재대학교(Pai Chai University)
.흔하디 흔한 134년 전통과 역사에 빛나는 배재학당이 경영하는 배재대학교 품위.
.최고(最古) 대학에서 최고(最高) 대학으로
[팩트체크] 배재학당(Pai Chai Academy) → 배재대학부(Pai Chai College) → 배재고등학당 → 배재중학교 → 배재고등학교 → 배재대학교(Pai Chai University)

 

1885. 08. 03 배재학당 (Pai Chai Academy, 培材學堂) 창립 (설립자 아펜젤러 H. G. Appenzeller) 
1887. 09  배재학당 신학 교육 실시 (감리교신학대)
1895. 09. 01 배재대학부 (Pai Chai College) (영문학과, 국한문학과, 신학과)
... 이걸 계기로 배재학당내 기독교연합대학 설립(연희전문 전신)...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에 아펜젤러관, 이승만 연구원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세대.. 1912 기독교연합대학 vs 1885 광혜원???
연세대학교 의료원은 1885년 미국 선교의사 호러스 뉴턴 알렌에 의해 세워진 한국 최초의 현대적 의료기관으로서 광혜원으로 출발하여 제중원, 세브란스병원을 거쳐 현재의 의료원으로 성장하였다. 1957년에 세브란스의과대학이 배재학당내 기독교연합대학 설립(연희전문 전신) 연희대학교와 통합하면서 연세대학교가 출범하였다.

 

[체크포인트] 씨스뿜바...씨스뿜바..씨스뿜바..

아카라카쵸쵸쵸 ~

아카라카칭(아라칭) 아카라카쵸(아라쵸)
아카라카 칭칭 쵸쵸쵸 (아라칭칭쵸쵸쵸)
랄랄라 시스붐바 연세선수 라플라 헤이 연세 야
....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 무궁하도록~~ 
라라라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
라라라라 씨스뿜바 배재학당 씨스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