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나부터 손을 내미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ㅋㅌㅌ 2019. 3. 5. 16:33

인터넷에서 아는 사람들은 아는 유명한 칠레 말이 있다.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

(명)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라는 뜻이다.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 Mamihlapinatapei)는 칠레 남부의 티에라델푸에고 지역의 야간(Yaghan)족 원주민들이 쓰던 명사 단어이다. 기네스 세계기록에 "가장 뜻이 긴 단어"이자 가장 번역이 어려운 단어로 등록되어 있다. 이렇게 뜻이 긴 말이 1994년 기네스북에 ‘가장 간단명료한(succinct) 단어’로 등재됐다. 


뜻을 해석하자면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해 주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애매모호한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조장 하실 분’이라는 의외의 단어와 대비되며 화제가 됐다. 조별과제에 참여하는 친구들은 모두 다 다른 시간표에, 약속에, 취미생활에, 동아리에, 개인공부에, 귀찮음 등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있지만 성과는 모든 조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야말로 서로 해 줬으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조장을 호선할 때 서로 맡기 싫어하는 그 애매한 분위기를 바로 이 ‘마밀라피나타파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라도 말로 바꾸면 '참 거시기한 상황을 아주 거시기하게 잘 거시기하다'. 경상도 말로 바꾸면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믄 내 그카나?” 누군가는 “맞나 안 맞나?” 하고, 다른 누군가는 같은 상황에서 “기여 아니여?(그냐 안 그냐?)”라 말한다. 인터넷 현자 분이 아주 명쾌하게 마밀라피나타파이를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했다. 그게 뭐냐고?


‘마밀라피나타파이’가 처음 알려진 것은 유튜브 영화 ‘Life in a Day(라이프 인 어 데이)’에서였다. 이 영화는 2010년 7월 24일 하루 동안 전 세계 197개국 8만 명이 찍은 일상을 모은 것이다. 인종과 국가가 다른 낯선 세계인이 같은 날 하나의 일상을 보여 주면서 삶과 행복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임을 알려 주는 영화다


자원봉사의 딜레마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해서 '필요성 책임전가 눈빛'이라고 직역할수 있다. 유의어는 눈치가 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이다. 그러니 요렇게 조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예수님도, 공자님도 옛날에 다 말씀하셨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 해야 한다. 눈치를 보는 순간이 자릿하다. 누구는 안 바쁜가? 누구는 안 아파? 그러면서도 배운 인간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동시에 생각하고 다시 마음이 안 좋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이 ‘마밀라피나타파이’의 순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를테면, 부장님이 “이번 주말에 업무 지원할 인원이 꼭 필요한데 말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박 대리와 김 대리 사이에 오가는 것을 마밀라피나타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터넷 시대는 사람간의 관계를 바꾸어 놓았다. 온라인을 통해 만남과 헤어짐이 쉬워지다 보니 ‘우리’라는 개념은 사실상 ‘임시’ 개념이 됐고 ‘우리’와 ‘남’의 구분도 모호해진 것이다. ‘우리’ 속 ‘친구’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친구에도 ‘절친’이나 ‘베프(베스트 프렌드)’라는 등급이 생기는가 하면 낮은 단계의 친구는 ‘겉친구’ ‘밥친구’라는 말로 구분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오글거린다는 말이 생긴 이후 사람들은 진지한 말을 하지 못하게 됐고, 멘붕이라는 말이 생긴 이후 사람들의 멘탈은 엄청나게 약해졌다. 




낯선 이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행복을 만드는 새로운 관계의 시대. 

지금은 나부터 손을 내미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